건배사는 무언가를 함께 이루자고 선동하거나 누군가를 축하하거나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함께 외치는 구호다. ‘~을(를) 위하여!’ 형의 건배사가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고려대 출신들은 “위하여!”가 아니라 “위하고! 고 고!”를 외치지만, 그건 특수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위하여’ 형을 몇 가지 살펴보자. 가장 알기 쉬운 건 “아무개를 위하여!”라고 하거나 어떤 단체나 기관의 이름을 대면서 발전과 성공을 기원하는 것인데, 이런 것은 너무 평범하고 밋밋해서 재미가 없다.
조금 나은 걸로 “나가자!”를 들 수 있다. “나라를 위해 가족(또는 가정)을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그 말이다. 아주 건전하고 모범적이다. 나처럼 장난 좋아하고 짓궂은 사람은 말을 바꿔 “나라를 버리고 가족(또는 가정)을 팽개치고(꼭 팽개쳐야 한다!) 자기만 챙기자!”라고 소리치지만.
‘당나귀’도 ‘위하여’ 형의 대표적 사례다.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건배를 제의한다는 데 마다할 사람이 있겠나? “성공과 행복을 위하여!“라는 뜻의 ‘성행위’도 있긴 하지만,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다.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기원하는 ‘개나발’도 어감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마당발’은 “마주 앉은 당신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뜻인데, 마주 앉지 않고 옆에 앉은 사람은 발전하면 안 되남? ‘아우성’은 “아름다운 우리들의 성공을 위하여!”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런 아우성 말고 다른 아우성이 먼저 있었지. 뭐였더라? ‘대한민국 성(性)포탈’의 이름이 바로 아우성이다. 아름다운 우리들의 성 이야기, 그런 말이다.
‘대나무’는 또 뭔가? “대화를 나누며 무한 성공을 위하여!”라는데, 억지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면 ‘소나무’도 만들지 그래? 소나무? “소주를 나눠 마시며 무한 성공을 위하여!” 참나무는 어때? “참이슬 나눠 마시며…” 그런 뜻이라고 하면 되는 거지. 닥나무는? “닥치고…” 뭐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감나무라면 "감사하며 나누며 무지 사랑하자!"라고 말할 수 있지. 그러면 배나무는? "배려하며 나누며 무조건 사랑하자!", "배우며 나누며 무한 사랑하자!"라고 해도 된다. 돈나무라는 나무도 있던데, 이거야 돈 이야기를 하면 되지 않겠어? "돈 벌어 나누는 무한 성공을 위해!" 밤나무는 "밤마다 나만…!" 앗, 이건 19금이다!
‘위하여’ 형 건배사의 가장 적나라한 예는 바로 ‘위하여’다. 이 말은 “위기를 기회로, 하면 된다, 여러분 힘내세요.“다. 말 만드느라고 정말 애썼다. 여러분은 여보나 여성 또는 여사원 여성동지 여성회원 여러분, 이런 식으로 바꿔 쓸 수도 있겠다.
근래 들은 ‘위하여’ 중에서 가장 그럴 듯한 것은 이런 것이다. “위”하면 잔을 위로 치켜든다. “하”하면 아래로 내린다. 그리고 “여”하면 입에 술을 여는(넣는) 거다. 잔을 위 아래로 올리고 내릴 때는 술이 쏟아지지 않게 좀 조심해야 한다. 아까운 술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잘 할 수만 있다면 “여!”에서 술을 내 입이 아니라 옆 사람 입에 넣어주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점잖은 자리에는 좀 어울리지 않겠지만, 세상만사 무엇이든 쉽게 되는 건 없으니 가열찬 훈련과 피나는 연습을 통해 이 동작이 몸에 배게 해보자. 위~↑하~↓여!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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