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시 청리면 웅진폴리실리콘 공장의 염산누출 사고에 대한 공장 측과 관계당국의 초기 대응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자칫 엄청난 환경재해나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유독물질 누출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비상매뉴얼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안전불감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공장 측이 염산 누출을 감지한 것은 12일 오전 7시30분쯤. 염산저장탱크 밸브의 균열에서 흘러나온 염산이 공기와 반응하면서 하얀 연기가 새 나오면서부터다. 당시 이 공장은 불황으로 6개월 전 가동을 중단하면서 관리요원들만 시설을 관리, 점검하던 상태. 하지만 공장 측은 자체 방제를 시도하면서 소방서 등 관계당국에는 전혀 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상우 웅진폴리실리콘 생산기술본부장은 "12일 오전 7시40분쯤 근무자가 염산탱크의 밸브에 약한 리크(균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며 "직원이 보수 및 안전 장비를 준비하고 엔지니어를 부르는 과정에서 오전 10시쯤 균열이 더 벌어져 유출량이 늘어 났다"고 말했다. 이러는 사이 산도 35%의 강 산성 염산이 외부로 마구 쏟아지면서 대규모의 하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염산누출사고가 당국에 신고된 것은 12일 오전 11시3분쯤으로 사고발생 후 3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공장에서 600여m 떨어진 축산농가 주민이 흰 연기가 공장을 뒤덮는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다. "자체적으로 초기 대응을 하는 과정에서 신고할 여유가 없었다"는 게 공장 측의 해명이다. 물론 염산저장탱크가 방류벽으로 차단돼 공장외부로 유출위험은 적다고 하나 위험천만한 판단이고 재난방지 시스템부재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 공장 주변 1.5km 반경에는 청하2리, 가천1리, 마공리 주민 640명이 생활하고 있다. 특히 염산이 기화돼 발생하는 염화수소가스는 부식성으로 폐 등 호흡기로 들이마실 경우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소방서와 경찰, 지방환경청 등 관계당국의 사고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유독물질의 유출량으로 봤을 때 위험의 정도를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일단 주민대피령을 내리고 상황판단을 하는 게 상식이지만 당국은 신고접수 직후 단지 주민들에게 외출금지 권고만 했다. 대구지방환경청이 대기오염도 검사를 실시, 안전하다는 판정이 난 것은 사고 신고 후 4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3시50분쯤이다.
늑장대응 논란도 일고 있다. 면사무소 측은 "오전 10시30분쯤 한 주민의 신고를 받아 10시40분쯤 상주시에 보고했다"고 밝혀 당국이 알아차린 시점까지 20~30분의 시차가 있어 상주시가 신속히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제작업도 더디게 진행됐다. 누출된 유독물질이 모이는 지하 저수조에서 이를 중화시키는 폐수처리장까지의 배관 시설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주시 관계자는 "지난해 6월 말 공장 가동 중단 후 공장 측이 배관 시설을 관리하지 않아 가동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당국은 결국 탱크로리 트럭 3대와 호스로 연결된 7대의 수중모터를 이용, 누출 염산을 400m 떨어진 폐수처리장으로 운반하는 작업을 통해 사건 발생 후 17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1차 방제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소방당국은 13일 오전까지 탱크 주변에 남아 있는 염산에 소석회 가루를 살포하는 중화 작업을 했다. 당국은 폐수처리장에 모은 염산까지 모두 중화시키는 데 약 10일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200여 톤의 누출 염산을 적정 산도(ph7)로 중화하는 일이 쉽지 않아 2차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정원조 인하대 화학과 교수는 "산도를 낮추기 위해 알칼리성 중화제를 많이 사용하면 거꾸로 토양이나 하천이 알칼리성으로 오염될 수도 있어 다량의 염산을 중성으로 딱 맞추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상주=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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