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남방주말(南方週末)의 파업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 사회주의 일당독재 체제인 중국은 강력한 언론통제를 통해 인민들의 눈과 귀를 장악하고,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담당하는 당의 선전부가 매체의 기사를 검열하고 편집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진다. 신문과 방송은 당의 선전도구로 전락,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없고 나팔수와 앵무새만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의 자유가 먼 나라 이야기인 이런 환경에서 남방주말 기자들이 신년 특집기사의 제목과 내용이 수정된 데 반발,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파업까지 벌였으니 그야말로 일대 사건이라 할 만했다. 깜짝 놀란 중국공산당은 광둥성의 1인자인 후춘화(胡春華) 서기가 직접 중재에 나서도록 해 파업 기자들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간신히 사태를 봉합한 상태다.
이번 사안을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중국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처음 나온 곳이 바로 중국 개혁개방의 성지인 광둥성이라는 사실이다. 남방주말이 발행부수 160여만부의 유력지로 성장, 언론자유의 투사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광둥성의 경제발전이란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단 얘기다. 광둥성은 중국에서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을 가장 먼저 실시한 곳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한 뒤 가장 먼저 특구로 지정한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그가 1992년 제2의 개혁개방 선언으로 불리는 남순강화(南巡講話)를 시작한 곳도 광둥성이다. 이 덕분에 이 곳은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가 됐다. 중국 중앙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티베트나 위구르의 자치독립이 아니라 광둥성의 분리독립이란 말도 있다. 경제가 든든한 뒷심이 되면서 그 만큼 자유로운 사상과 언론이 싹 트고 자랄 수 있었던 셈이다.
남방주말 사태가 한창일 때 베이징에 상주하는 외국 특파원들은 한편으론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방북 행적을 쫓느라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남방주말의 파업과 구글 회장의 방북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아직 평가하긴 이르지만 슈미트 회장의 방북은 북한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면서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그럼 과연 북한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남방주말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교훈은 폐쇄적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경제성장에서 온다는 것이다. 북한의 변화는 경제가 발전할 때 비로소 가능해 질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정말 북한의 변화를 원한다면 북한의 경제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서 변화가 생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정부에선 북한이 붕괴할 것을 상정해 고강도 압박을 펴 왔다. 그러나 배가 고파 망하는 사회는 없다. 오히려 빈부격차 등이 커져 배가 아픈 구성원이 많아질 때 그 사회는 위기를 맞는다.
더구나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북한에 대한 우리의 영향력을 키우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 베이징에서 만난 한 중국인 교수는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지원에서 생기는 것"이라며 "한국은 늘 중국에게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하면서도 왜 스스로 영향력을 키우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성장을 돕는 것은 남북한 격차를 줄여서 미래 통일한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열강들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이미 슈미트 회장의 방북에서 볼 수 있듯 그 동안 우리의 입장을 감안해 북한과 직접 접촉하는 것을 자제했던 미국은 이제 북한과의 직접 접촉이 공개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야 할 길은 점점 더 분명해진다. 남방주말 같은 매체가 북한에도 생기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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