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진 7일 오전 7시쯤 서울 당산동에 사는 임득실(81) 할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영등포구 노인봉사대'라고 쓰인 노란 조끼를 입고 집을 나섰다. 5년 전부터 매주 네 차례(월화목금)씩 해오던 당산 4가 일대 쓰레기를 치우는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특히 연립주택이 많은 당산4가는 쓰레기 불법 투기가 종종 일어나는 편이라 주말이 지나면 길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쌓이지만 임 할아버지의 봉사활동 덕분에 월요일에도 골목이 항상 깨끗했다.
하지만 이날이 마지막 봉사가 됐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운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8시15분쯤 연락을 받았던 부인 김계순(75) 할머니는 "그날 아침도 추우니까 그냥 집에서 쉬라고 말렸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1932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상경해 영등포에만 50년 넘게 살며 몇 년 전까지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팔았다. 5년 전 어느 날 봉사대 조끼와 모자를 들고 온 임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당산동에서 쓰레기 줍기나 아이들 등굣길 건널목 안전도우미 등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부인이나 자식들에겐 설명도 없었다. 둘째 아들 대희(47)씨는 "워낙 무뚝뚝하던 분이라 어떤 계기로 봉사를 시작하셨는지 아무 말씀이 없었다"며 "젊은 시절 너무 고생하셔서 나이 들고 웬만큼 살 만해지니까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들은 묵묵히 쓰레기를 줍던 할아버지를 생생히 기억했다. 주부 신유리(38)씨는 "한번은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봉사왕'이라고 부르면서 반갑게 인사했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활짝 웃으셨다"며 "정이 많던 할아버지인데 그렇게 돌아가셨다니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임 할아버지와 함께 봉사활동 했던 조옥연(84)씨는 "할아버지가 부인과 운동 삼아 재미있게 봉사하다가 올해 구청의 운영예산이 줄어 인원을 줄이는 바람에 이달부터 혼자 봉사활동을 해왔다"며 "할아버지는 쓰레기가 넘쳐도 한 마디 불평 없이 묵묵히 일 하셨다"고 말했다.
한편 영등포경찰서는 당산동 5가 양평로에서 정지신호를 위반한 채 운전하다 임 할아버지를 치여 사망케 한 혐의로 버스기사 이모(50)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교통 사망사고를 낸 전력이 있는 이씨가 또 신호위반으로 보행자를 숨지게 했는데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범행 일부를 부인했다"며 "사고 지점 주변의 CCTV와 차량용 블랙박스 자료를 분석해 이씨의 과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장재진기자 3j082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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