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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

입력
2013.01.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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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은둔자 장발장은 양녀 코제트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는 열혈공화파 청년 마리우스. 장발장은 두렵고 화가 난다. 늘그막에 겨우 얻은 삶의 빛을 젊은 사내가 나타나 가로채려는 것이다.

나는 장발장의 마음속을 스쳤을 다른 그늘도 상상해 본다. 첫눈에 반한 불같은 사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그가 모를 리 없다. 게다가 딸의 상대가 하필 혁명을 통해 새 세상을 이루겠다는 부잣집 도련님이라니. 이 도련님이 바라는 꿈이 얼마나 요원한 것인지, 격동의 프랑스를 온몸으로 살아온 장발장이 또한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장발장은 질투와 근심을 묻어두고 마리우스의 편에 서서 싸운다.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들쳐 업고 천신만고 끝에 소요 속을 빠져나와, 그를 코제트의 곁으로 보내준다. 다 겪어봤는데 별 거 아니더라. 네 나이 때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지. 늙은 장발장은 훈계하는 꼰대가 되는 대신 그저 젊은이들을 도운 후 가만히 뒤로 물러난다.

열정은 앞뒤를 꼼꼼히 살피지 않는다. 그것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심정. 첫 경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남는 건 처참한 패배감과 뼈저린 후회뿐일지라도 젊음의 이 특권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 뭣 모르고 달려드는 열정이 이 세계를 약간이나마 움직인다는 것. 장발장의 고독한 죽음에서 이런 마음을 읽는 건, 그런 마음의 소유자를 만나고 싶은, 혹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내 바람의 오독인지도 모른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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