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자취를 감춘 남한의 야생 생태계에서 담비가 최상위 포식자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담비가 모이면 호랑이도 잡는다"는 옛말이 사실임이 확인된 셈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리산, 속리산 등지에서 지난 4년 간 무선 위치추적 및 무인 카메라, 배설물을 이용한 먹이 분석 등을 통해 담비의 행동권과 먹이습성을 연구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13일 밝혔다. 호랑이는 남한에서 1920년대에 자취를 감췄으며, 북한에서는 러시아와의 접경지대 인근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담비의 배설물 414점을 분석한 결과 멧돼지, 고라니, 산양 등 담비보다 훨씬 몸집이 큰 대형 포유류가 전체 먹이의 8.5%를 차지했다. 전체적으로 청설모 다람쥐 멧토끼 두더지 말벌 등 동물성 먹이가 50.6%, 다래 버찌 머루 감 등 식물성 먹이가 49.4%인 것으로 나타났다. 담비 한 무리는 고라니나 멧돼지를 연간 9마리, 청설모를 75마리가량 잡아먹는 것으로 추정됐다.
몸무게 3㎏, 몸길이 60㎝ 정도인 담비가 몸무게 10㎏정도의 생후 7~8개월 된 멧돼지나 고라니 등을 사냥할 수 있는 비결은 날렵한 몸과 3~4마리씩 떼를 지어 역할을 분담해 상대를 공격하는 무리 사냥의 노하우 때문. 최태영 환경과학원 연구사는 "산양의 사체 등을 분석한 결과 담비 무리는 목표물을 발견하면 한 마리가 먼저 목표물의 눈을 물어뜯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 뒤, 나머지들이 목표물에 올라타 여기저기를 물어뜯는 식으로 사냥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그는 "호랑이는 큰 송곳니를 가져 한 번의 공격으로 사냥물의 숨통을 끊지만, 담비는 무리 사냥과 타고난 용맹성으로 체구가 작은 약점을 극복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담비가 즐겨 먹는 멧돼지나 고라니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대표적인 야생동물이고 청설모는 잣 호두 밤 등 고소득 견과류에, 말벌은 양봉에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담비는 야생동물에 의한 작물 피해를 줄이는 활용가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환경과학원은 담비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남한에 2,000마리 정도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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