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벤션센터로 가자는 말을 하기도 전에 택시가 출발했다. "벌써 10번째 손님"이란다. 라스베이거스 거리 곳곳에선 빈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대부분 정장 차림의 비즈니스맨들이다.
운전기사 마이어씨는 지금이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라고 했다. "카지노가 붐비는 휴가철은 그다지 실속이 없다. 그들은 좀체 돌아다니지 않기 때문"이란다. 오히려 비즈니스맨들이 붐비는 이 맘 때가 더 손님이 많다는 것이다. 이곳에선 지금 세계최대가전시회 'CES 2013'(현지시간 8~11일)가 열리고 있다.
미국 네바다주 남동부의 사막도시 라스베이거스. 해마다 4,0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이 거대 카지노 왕국으로 몰려든다. 하지만 이 도시가 카지노만으로 먹고 산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의 도시이자 동시에 컨벤션의 도시이다.
컨벤션은 거대한 만남이다. 대규모 국제회의도 있고 전시ㆍ박람회도 있다. 21세기 들어 컨벤션은 지식과 정보의 생산유통을 촉진하는 지식기반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풍부한 숙박시설에 대형 전시장, 각종 볼 거리와 놀 거리를 갖춘 라스베이거스는 컨벤션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경기부침을 많이 타는 카지노만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판단, 지난 2006년 컨벤션 확충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웠다. 더 많은 컨벤션센터를 짓기 위해 구 도심의 고도제한까지 없앴다. 도시를 가득 메우던 럭셔리 호텔의 일부는 문을 닫고 비즈니스 센터신축에 나섰다.
그 결과 라스베이거스는 국제건축박람회, 세계신발박람회, 세계콘크리트박람회, 방송장비박람회(NAB), 심지어 나이트클럽&바 박람회와 포르노박람회까지 매달 3~4차례 굵직한 전시회가 열리는 도시가 됐다.
CES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전시회다. 올해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소니, 지멘스 등 55개국 3,000개 글로벌 IT업체가 참여했으며, 전시공간은 무려 축구장 24개 크기(약 17만3,700m²)에 달한다. 전 세계 IT종사자, 취재인력, 일반 관광객까지 최소 15만 명이 이상이 다녀간 것으로 주최측은 추산하고 있다.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상상 그 이상이다. 주요 참가업체들은 부스를 꾸미고 거래처를 초청하는 데 최소 100억~200억 원을 쓴다. 3,000여개 업체들의 비용을 합하면 천문학적인 숫자다.
컨벤션에 참가하는 비즈니스맨과 관광객들은 전시회만 보고 가지 않는다. 온 김에 쇼핑도 하고, 관광도 하고, 골프도 친다. 대형 컨벤션이 열리면 호텔 항공 식당 등이 함께 뜰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전후방 연관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인데, 2011년 CES가 열렸던 나흘 간의 경제효과가 무려 1억1,800만 달러(약 1,250억원)에 달했다고 분석도 있다.
더욱이 컨벤션 참가자들은 고소득층이 많다. 전체 관광객수 중 전시회를 찾는 이들은 10% 남짓이지만,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은 전시회 방문객들이 일반 관광객보다 3~5배 정도 더 돈을 쓰고 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컨벤션은 '굴뚝 없는 황금산업'이라 불리는 이유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수입은 2011년 61억달러로 마카오의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CES 같은 대형 전시회를 연 40여회에서 60회까지 늘릴 계획이다. 라스베이거스의 컨벤션수입은 이미 카지노수입을 앞질렀다. '밤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이미 '낮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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