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토론토에 살던 소녀 앨리슨 앳킨스는 지난해 7월 16세로 죽었다. 12세에 궤양성 대장염 진단을 받고 결장을 떼어낸 후 집안에서만 지낸 그에게 인터넷 활동은 유일한 사회생활이었다. 앨리슨은 페이스북 트위터 텀블러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500여명의 친구들을 사귀고, 마음을 털어놓고, 세상의 풍경을 접했다.
앨리슨이 죽은 후 가족들은 그의 온라인 기록들을 찾아보고, SNS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허전함을 달랬다. 가족들은 앨리슨의 SNS 계정 비밀번호는 몰랐지만, 그의 컴퓨터를 통해 계정에 자동 로그인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잠시였다. 몇 달 후 컴퓨터의 자동 로그인 설정이 해제됐고, 앨리슨의 계정들은 폐쇄됐다. 가족들은 "앨리슨을 두 번 잃은 것"이라며 SNS 업체들에게 계정을 복원하고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이용자의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 앨리슨의 엄마는 자신에게서 죽은 딸의 사생활을 보호하려는 SNS 업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딸의 생전 삶을 알고 기억하는 것은 엄마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앨리슨의 사례는 최근 북미권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디지털 유산'의 쟁점을 잘 보여준다. 죽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온라인에 남긴 삶의 흔적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유족들의 소유권 주장에 인터넷 업체들은 개인정보 보호 규정으로 맞선다. 산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현행 프라이버시 관련법들은 뚜렷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분쟁이 생길 때마다 결론은 제각각이다. 2004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은 해병대원 저스틴 엘스워스의 부모가 야후를 상대로 아들의 이메일 계정 접근권을 달라는 소송을 내 승소했다. 야후는 그 이후 분쟁을 피하기 위해 자사의 서비스 규정을 바꿨다. "이메일 계정은 유산으로 분배될 수 있는 재산이 아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고인이 유언을 통해 계정 공유에 동의했을 때는 이를 존중한다"는 해결책을 명시했다. 따라서 야후는 유언장이 없을 경우 고인의 이메일 계정을 유족에게 넘기지 않고 폐쇄한다.
지난해 9월 자살한 영국 여성 모델 사하르 다프타리의 유족이 고인의 페이스북 계정 접근권을 달라며 낸 소송에서는 유족이 졌다. 유족은 다프타리의 계정 내용이 그의 자살 원인을 밝히는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미국 법원은 "계정은 재산이 아니다"라며 계정정보 공개를 거부한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이용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생명인 인터넷 기업들은 고인이라도 개인 정보를 쉽게 유출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두려워한다. 기업들이 소비자의 전자소통 기록을 당사자 동의나 정부 명령없이 임의 처리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이들 업체가 유족들의 요청을 거절하는 법적 근거다. 이 법은 인터넷이 상업적으로 부상하기 이전인 1986년 통과됐다. 최근에는 주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재산권을 확대하는 법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코네티컷과 로드아일랜드는 고인의 이메일 계정을 유산으로 간주해 유언 집행자에게 관할권을 준다. 인디애나 아이다호 오클라호마에서는 SNS도 유산에 포함된다. 매사추세츠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이들 법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우선시하는 연방정부 법 취지와 충돌하는 면이 있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법적 논의는 지난해 11월에야 시작돼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2년이 걸릴 전망이다. 전국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주법 초안 도출을 권고하는 비영리단체 통일법위원회(Uniform Law Commission)는 디지털 계정에 대한 '공인된 이용자'에 이용자의 재산집행 대리인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인의 디지털 재산권을 획득하기 위한 법적 싸움은 '유족의 알 권리'와 '고인의 잊힐 권리'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앨리슨의 부모는 딸의 SNS를 통해 그가 가족에게는 내색하지 않은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점을 알게 됐지만 "앨리슨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며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니애폴리스의 컴퓨터 전문가인 마크 랜터맨은 2009년 화재로 죽은 남성의 유족 요청으로 고인의 컴퓨터를 복원했다가 유족에게 충격을 줄만한 비밀 파일들을 발견하고 이를 몰래 삭제했다. 고인이 방화 기술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고, 근무처에서 횡령을 했으며, 아내 아닌 여성과 불륜 관계였다는 것이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