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제? 일단 리콴유에게 상의하라!'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지켜온 불문율의 하나다. 베트남전에 올인 하던 존슨 대통령이 리콴유를 백악관으로 초청, 그로부터 한 수를 배운다. "월남과의 전쟁에서 과연 미국이 이길 수 있는가?"라는 존슨의 질문에 리콴유의 답변은 짧되 따끔했다. "군사적 견지에서만 보자면 베트남 전쟁의 승산은 희박하다."
닉슨도 리콴유를 백악관에 초청, 역시 베트남 해결의 대안을 묻자 그는 우선 중국으로 향한 미국의 모든 문호를 개방할 것과 비 전략상품들에 대한 교역의 시작을 제의했다. 닉슨은 바로 그 다음 해 베이징을 방문, 본인의 말대로 "세계를 뒤바꾼 7일"이 되었다.
중국을 방문하려던 레이건 대통령이 가는 길에 타이완을 방문해도 괜찮겠냐고 리콴유에게 묻자 "타이완을 방문해서는 절대 안 된다. 중국에 가기 전에 중국의 총리인 자오쯔양이나 총서기 후야호방을 워싱턴으로 먼저 초대해야한다"고 답변. 이 역시 그대로 실현됐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그의 눈은 이토록 신산(神算)에 가까워, 이웃집 숟가락 수효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1998년 3월 미 부통령 먼데일이 클린턴의 메시지를 인도네시아 수하르토에게 전달 후 귀로에 싱가포르에 기착, 리콴유에게 물었다. "당신 생각에 마르코스는 영웅인가 악한인가? 또 수하르토는 어떤가?" 다음은 리콴유의 답변. "마르코스는 영웅으로 시작했지만 악한으로 끝났다. 수하르토는 다르다. 지금의 그를 인도네시아의 대 술탄으로 보면 정확하다. 부인도 그곳 술탄 왕가의 공주다. 수하르토는 따라서 자녀들의 특권을 술탄이 누릴 당연한 권리로 여길 뿐,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리콴유의 총기는 고르바초프를 만난 후 크렘린 궁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그가 남긴 기록으로 더욱 빛난다. "이처럼 존경할 만한 인물이 그토록 사악한 체제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다니…이 얼마나 행운인가! 그가 다른 크렘린 지도자처럼 군사력을 동원, 소련문제를 해결하려 들었던들 세계의 여타 지역에 막대한 손상을 야기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고르바초프도 중국의 '거인' 덩샤오핑에 비하면 한 수 처지는 걸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천안문 사태의 해결사 덩샤오핑을 만난 후 리콴유가 남긴 언급을 보자. "전쟁과 혁명의 베테랑으로서, 그는 천안문 학생시위가 중국을 다시 혼란과 무질서로, 또 그 여파가 향후 100년에 미칠 위험한 사태로 판단한 것이다. 한평생을 혁명 속에 살아온 그는 천안문사태에서 혁명의 초기징후를 감지한 것이다. 책으로만 혁명을 접해왔던 고르바초프와는 바로 이점에서 달랐다."
귀신이 귀신을 알아보듯 그 덩샤오핑이 리콴유를 먼저 알아봤다는 점도 흥미롭다. 통일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덩은 인근 국가에 미칠 '도미노 논리'를 우려, 74세의 노구를 끌고 싱가포르를 찾은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소?"덩샤오핑의 질문에 리콴유가 비장의 해법을 제시한다. "동남아 화교를 상대로해온 중국의 라디오방송을 당장 중단하면 됩니다. 혈연적 유대를 너무 노골적으로 호소하면 인근 국가들의 의심을 증대시킬 뿐입니다."
동남아 공산당에 대한 중국의 방송은 즉시 중단됐다. 어디 그 뿐인가. 세계 3,000만 명의 화교를 상대로 화상(華商)이 결성된 것도 그 자리에서 나온 리콴유의 아이디어를 덩이 살린 덕이다. 화상이 매년 중국에 투자하는 돈은 세계 각국이 중국에 투자하는 해외투자 전체 액의 60~70%에 달하는 거액이다.
리콴유를 자랑하려는 글이 아니다. 박근혜 당선인더러 어서 그를 만나 사회적 통합과 일자리창출의 해법을 묻도록 권하고 싶어서다. 리콴유가 평소 개탄해온 대로 '만사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속성에 비춰, 지금처럼 국내에서 아무리 지지고 볶아야 뾰족한 해법이 나오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고맙게도 그는 아직 살아있고, 선친 박대통령을 존경했던 인물이 아니던가.
김승웅 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swkim43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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