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생소한 '특수촬영물' 소재 통해 기성 세대와 젊은층 간극 시사각박한 세상서 마음 여는 과정 담겨
재밌다. 잘 읽힌다. 아리다. 그리고 따뜻하다.
'파워레인저'로 대표되는 어린이용 특수촬영물을 소재로 작가는 할리퀸 로맨스와 추리물을 엮은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각박한 세상에서 서로를 냉소하다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여는 인물들의 면면을 읽고나면 한 자락 페이소스가 남는다. 이영훈의 장편 는 킬링타임용 소설이 갖고 있는 거의 모든 미덕을 갖고 있다.
이야기는 서른두 살의 보험회사 직원 영호에게 마흔 살의 채영이 보험금을 신청하러 오면서 시작된다. 자궁암 2기에 걸린 이 여자는 서류가 아니라, 꼭 누군가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면서, 병원에 입원하기 이틀 전 보험회사를 찾아와 영호를 만난다. 영호는 머리를 박박 민 대머리의 이 여자가 마음에 걸린다. 보험금 수령자, 채영에게 '직원으로서' 예의를 차리기 위해 그녀의 냉면을 대신 먹고, 신문지로 모자를 만들어 씌워주고, 병원을 찾아가다 결혼까지 하게 된다.
채영에게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 샘이 있다. 중학교 1학년인 샘은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갔다가, 아버지가 마약소지자로 구속되면서 엄마에게로 오게 된다. 새 아버지와 새 환경이 영 어색한 샘은 영호 앞에서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밤마다 연기도 서툴고, 대사도 유치하고 특수효과도 수준이하인 특수촬영물 '변신왕 체인지킹'에 푹 빠져 있다.
영호는 샘을 이해하기 위해 '체인지킹'의 실체를 파헤치고, 특촬물 팬카페를 통해 '블루'와 '라이더레인저'를 만나며 히키코모리의 생활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영호와 같은 의붓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제 자식의 팔을 부러뜨려 보험금을 타내는 윤필과 같은 아버지도 있다. 영호는 보험사정인 '안'과 함께 윤필의 보험사고를 조사한다. 윤필의 아들이 사고로 팔을 골절당해 보험금을 신청한 사건인데, 경찰 출신인 안의 예리한 눈썰미에는 음모의 기미가 엿보인다. 윤필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윤필과 윤필 형의 손가락 절단해 보험금을 가로챘었다. 작가는 대립되는 두 아버지상을 병치시켜 영호가 윤필로 전락하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은 각박한 세상임을 은유한다.
영호의 노력은 헛되지 않다. 영호가 라이더레인저와 가까워지면서, 그 역시 마음의 문을 연다. 자신의 진짜 이름이 '민'이라고 밝힌 그의 말을 통해 영호는 자신의 세대와 샘의 세대 사이 간극을, 샘의 마음을 이해한다.
'우리에겐 아버지가 없어, 믿고 따를 커다란 이야기가 없어. 맞서 싸울 적도 없고, 체온을 나눌 친구도 없어. 심지어 우리에겐 우리만의 역사도, 이야기도 없어.'(281쪽) '변신왕을 보는 동안 그애(샘)는 직감했을 거야. 아버지가 없는 자신의 마지막을. 비로소 깨달은 거지. 자신에게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은 없다는 걸. 그애는 이제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려는 거야. 맞설 준비를 하는 거지. 이 세계의 압력에, 그 확연한 질감에 맞서 자신의 인력을 찾으려는 거야.'(282쪽)
샘도 이제 영호에게 마음을 연다. 비록 채연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지만 샘은 세상으로 한 발 나온다.
아버지 없이 자란 세대가 각자의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얘기를 담은 이 소설은 은희경의 을 시작으로 전경린의 , 천명관의 등을 배출한 문학동네소설상 지난해 수상작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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