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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소녀의 실종… 드러나는 가족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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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소녀의 실종… 드러나는 가족의 비극

입력
2013.01.1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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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추리소설들이 흔히 따르는 서사의 트랙은 마술사의 트릭과 흡사하다. 기량이 능란한 마술사일수록 손놀림을 절제하듯, 멋진 반전은 복선의 현혹적인 나열보다 절제와 자연스러운 은폐의 기량으로 승부를 건다. 급반전의 극적인 효과를 자랑하는 꽤 유명한 작품들 가운데에도, 작정하고 따지고 들면 개운찮은 뒷맛을 남길 때가 많고, 더러는 서사 전체가 전복되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반전은 오해의 서사이고, 그릇된 혐의의 화살은, 문학에서나 현실에서나, 어설픈 트릭 한두 개로 방향을 틀지 않는 법이다.

별 기대 없이 들춰보다가 급류에 휩쓸리듯 '어, 어' 하며 내처 읽게 된 이 소설은, 이를테면 단아한 반전의 한 사례라 할 만하다. 현란하지 않으면서 다면적이고, 격렬하지 않지만 표지에 적힌 조이스 캐롤 오츠의 독후감처럼 독자의 심장을 단숨에 움켜 쥔다.

아담하고 정적인 마을에서 여덟 살 소녀가 실종된다. 납치 용의자는 사건 당일 베이비시터로 고용됐던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한 10대 소년. 수사가 시작되고, 의심들이 증폭될수록 소년의 가족은 한 없이 위축되고, 동시에 관계 역시 조금씩 균열한다. 너무나 당연하던 것들이 서서히 낯설어지고, 조심스럽게 구축해 온 서로에 대한 오랜 확신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묻어뒀던 아버지의 가족사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등장 인물들의 표정과 사뭇 다른 내면 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 때 이후로 나는 인생의 절반이 부정(否定)이며,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서조차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못 본 체하기로 결정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74쪽)

소설은 몇 장의 스냅사진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가족사진은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표정들이 감춘 거짓말들이 더 깊이 감춘 진실로, 다시 의심으로 엎치락뒤치락한다. 범죄가 있고 추리가 있고, 범인도 붙잡히지만, 공분의 악당도 유능한 수사관도 후련한 정의도 없다. 대신 잘 찍힌 몇 컷의 스냅사진으로 이어지는 삶의 낯설지 않은, 하지만 알쏭달쏭한 단면들이 있다. 작중 화자의 혼잣말처럼 "이제까지 인생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이 다 합쳐봤자 잔인한 농담 하나에 불과"(282쪽)한 것일까.

최윤필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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