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0일 차기 재무장관에 제이컵 루(57)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명할 것이라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이달 말 퇴임한다.
루는 오바마 이너서클인 시카고사단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이자 예산전문가다. 빌 클린턴 정부에 이어 2010년 두 번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을 지냈고 2011년에는 비서실장으로 승진, 백악관 안살림을 챙겼다. 루의 재무장관 기용은 3월 이전까지 공화당과 예산삭감 및 국가부채 상한 확대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한 오바마의 선택이라고 언론은 평했다. 오바마에게는 지난 2년 동안 호흡을 맞춰온 루가 임박한 협상에서 공화당에 맞설 적임자일 수 있다. 예산항목을 훤히 꿰뚫고 있는 그에게 마법의 지팡이가 아닌 엑셀 정산표를 손에 쥐고 있는 '어른 해리 포터'란 별명까지 붙어 있다.
그러나 루에게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경제의 해법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 2기에서 당분간 일자리 창출 또는 정부지출 확대를 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인사라고 혹평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루가 지금은 최선일지 모르지만 백악관은 실업난 해결과 일자리 만들기에 치중해야 한다"고 인사의 한계를 언급했다. 재무부가 경기회복을 위해 국가의 시장개입을 주창할 케인지언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루가 월가와 유대감이 적고 국제적 경험이 거의 없어 글로벌 금융위기 대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도 약점이다. 그는 2008년 씨티그룹의 운영책임자(COO)로 있으면서 540억달러 규모의 헤지펀드를 운용했으나 이 펀드는 부동산 투자로 큰 손실을 입었다.
뉴욕 태생인 루는 1968년 대선 때 열두살 나이로 유진 매카시 민주당 후보의 자원봉사자로 일했고 고교 시절부터 민주당원으로 활동했다. 하버드대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나온 이후 민주당 원내대표 보좌관 등을 지내며 공화당과의 예산협상을 도맡아 진행했다. 지금도 주말이면 워싱턴을 떠나 뉴욕시 브롱스의 집을 찾는 루는 백악관이 처음 자리를 제안하자 유대 안식일(토요일)에는 일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 정도로 정통 유대교도로 알려져 있다. 같은 유대인인 가이트너가 했던 오바마 정부의 유대사회 창구역할도 그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루는 동그라미 7개로 된 그의 서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악필로도 유명하다. 모든 달러화의 오른쪽 하단에는 재무장관의 서명이 함께 인쇄되기 때문에 그가 재무장관이 되면 미국과 세계는 달러를 사용할 때마다 그의 악필 서명을 볼 수 있다. 루가 임명되면 재무부와 벤 버냉키 의장이 이끄는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밀월관계도 끝날 것으로 보인다. 가이트너와 달리 루는 버냉키와 친분이 없고 성향상 그가 연준의 편에 설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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