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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소중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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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소중한 책

입력
2013.01.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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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는 딸아이가 새로 교과서를 받아왔다며 책들을 펼쳐 놓았다. 아이는 먼저 수학책을 집어 들고 정말 이렇게 어려운 게 말이 되냐고 볼 멘 목소리로 부산을 떨더니, 조금 있다 다른 책 한 권을 들고는 침대에 올라와 얌전해졌다.

무엇을 보나 들여다보니 아이는 "엄마, 남자 고추!"하며 배시시 웃는다. 남과 여의 생식기관과 하는 일에 대해 알아보는 그림이다. 표지를 보니 체육 교과서이다. 이런 내용이 체육 교과목에 있는 것이 신기했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같이 들여다보았다.

보건과 안전이라는 부분에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점, 생식기관 그리고 성폭력의 원인과 유형, 예방법 등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여자의 생식기관과 월경에 대한 생리현상, 남자의 생식기관과 몽정, 올바른 몸가짐과 몸을 깨끗이 하는 태도 등의 내용도 담겨 있었다.

꽤 오랜 시간 침대에 누워 진지하게 책을 보던 아이에게 자라고 하니, 책을 건네며 소중한 책이니 잘 놔둬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소중한 책'이라는 대목에 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웃음을 참고 태연한 척 했다.

요즘 성교육에 대한 것은 유아기부터 시작되어 단계별로 나와 있는 책들이 많다. 그런데 정규 교과과정에서는 바로 5학년 체육에서 처음 다루게 되는 셈이다. 반면에 내가 여성과 남성의 성에 대해 배웠던 것은 중학교 1학년 생물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릇하고 신기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 시간,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호기심에 찬물을 붓듯, 선생님은 매우 엄숙하고 빠르게 설명을 이어가셨다. 내용 또한 지극히 생물학적인 것들이 전부였었다. 그 시절엔 특별히 성교육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기 어려울 만큼, 성에 대해 폐쇄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보니 학창시절 성과 임신에 대한 각종 괴담과 루머가 호기심을 부추기고, 허황된 소문들에 공포감도 느껴야 했고, 그야말로 성에 대해 무지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러다 대학에 와서 보건 수업시간에야 제대로 성교육을 받은 셈이 되었다.

가정에서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성교육이란 것도 마찬가지였다. 내 기억으로는 어머니도 내게 그저 청결만 강조하셨을 뿐이었다. 다만 중학교 때 생리를 시작하고 시간이 좀 지난 후, 책꽂이에 제목이 보이지 않도록 겉표지를 싼, 새 책 한 권을 놓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말씀도 없이 왜 책을 여기에 두셨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말씀 없이 책을 놓으신 어머니나, 그런 질문조차도 꺼내기 부끄러웠던 나나, 성은 관심을 표명하기엔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부분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딸의 책꽂이에 성 교육에 관한 점잖은 책 한 권을 놓으셨고, 몸에 좋다며 천 생리대를 삶아 주시는 것으로 그 시절 어머니의 역할을 하셨다고 믿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내가 첫 생리를 할 때 그 귀찮은 것을 좀 더 늦게 하면 좋았을 텐데,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씀하셨고, 내가 임신을 했을 때 축하보다 출산의 고통을 먼저 걱정하셨다. 내가 딸을 출산하였을 때, 화가로서의 삶에 아들보다는 딸이 나를 더 이해해 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딸이 또 아이를 낳는 산고가 있을 거라는 걱정을 미리 하셨다.

늘 솔직하셨던 어머니에겐 여자로서 살아야 하는 일생이 고단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내 딸아이가 생리를 시작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일인지를 알리고 반길 것이다. 딸이 아이를 낳는 고통을 걱정할 때, 산통 끝에 얻어지는 탄생이 얼마나 큰 감동인지 함께 이야기 나눌 것이다.

초등 5학년 체육은 정말 당연한 아이의 관심사이고 소중한 책이 맞다. 이 책을 소중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부럽기조차 하다. 헌신과 성공의 삶을 다룬 위인전이나 베스트셀러 소설이나, 명사의 시집은 아니지만, 지금 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책이 초등 5학년 체육이라는 것은 제 나이의 옷을 입은 듯, 편하고 솔직하고 자유로워 보여 좋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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