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은 주요 공직 인사를 단행할 때 어느 정도 '보안'을 중시했을까.
김영삼(YS)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처럼 인사 보안을 극도로 중시했다. 그렇다 보니 의외의 인물을 발탁하는 '깜짝쇼' 인사를 자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 첫 조각 발표에서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으로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한완상 당시 서울대 교수를 발탁했을 때 '파격 인사'라는 평을 들었다.
YS 정권 말기인 1997년 8월 개각도 보안 인사의 대표적 사례이다. 당시 윤여준 청와대 대변인은 인선 당일에야 YS로부터 인선 내용을 구술받은 뒤 이름만 적힌 발표문 한 장만 가지고 개각을 발표했다. 또 무소속 홍사덕 의원이 정무1장관으로 발탁되는 등 내용 면에서도 '깜짝 인사'를 했다.
하지만 YS의 인사 스타일은 '검증 부실'이란 부작용을 낳았다. 김 전 대통령의 첫 인선 작품이었던 박희태 법무부 장관과 박양실 보건사회부 장관이 각각 자녀 편법 입학과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며칠 만에 경질되는 등 각료들의 불명예 퇴진이 줄을 이었다.
이에 따라 김대중(DJ) 정부는 보안을 강조하기 보다는 복수의 인사 후보군을 사전에 언론에 알려 검증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1998년 2월 인수위 시절에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 과정에서 복수의 인선안을 발표했다. 조각에 앞서 하마평에 오른 후보들에 대한 언론의 평가를 인선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힐 정도였다. 복수의 후보를 공개해 언론의 사전 검증을 활용하는 방식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계속됐다.
하지만 언론 검증에도 불구하고 도덕성 논란 등으로 국무위원들의 불명예 퇴진이 계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는 2000년 6월 대법원장ㆍ헌법재판소장ㆍ국무총리 등을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했다. 이어 2003년 1월에는 인사청문회 대상이 국정원장ㆍ검찰총장ㆍ국세청장ㆍ경찰청장 등으로까지 확대됐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새로 임명된 장관이 도덕성 논란으로 낙마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2005년 7월 모든 국무위원(장관)으로 인사청문 대상을 확대했다.
이명박 정부는 고위 공직 후보를 복수로 공개하는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보안을 그리 중시하지는 않았다. 이명박 정부 등 대부분의 정권에서는 대통령 측근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언론에 고위 공직 후보군을 흘리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대통령학을 전공한 최진 경기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인사 보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반면 YS와 박 당선인은 보안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며 "YS와 박 당선인은 극적 효과를 통해 자신의 위상과 리더십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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