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이모(33)씨는 온라인 통장 개설 업무를 지난해 하반기부터 맡게 됐다. 고객이 점포를 방문하지 않고도 인터넷 등을 통해 통장개설을 신청하면 간단한 절차를 거쳐 통장까지 건네주는 것이 주업무다. 이씨가 하루 개설해주는 통장은 겨우 평균 4개꼴. 이씨는 "일반 점포에서 근무할 때는 5분이면 통장 하나를 개설해줬지만, 온라인 서비스의 경우 만들어 고객에게 직접 전달해줘야 하기에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은행 점포를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객 서비스를 위해 고육지책으로 만들어낸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들이 점포 확장이 어려운 한계를 극복하는 돌파구로 주목해 오던 '첨단 점포'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점포와 직원을 줄이기 위해 내놓았지만 실제 운영해 보니 일반 점포와 별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한데다 효율성은 오히려 떨어져, 미래의 주요 수익모델이 되기엔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많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첨단 점포 증설을 미루는 대신 계열사 점포를 같이 쓰거나, 탄력적 점포시간 운영 등을 통해 고객 공략에 나서고 있다.
9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 점포수는 지난해 9월 현재 7,810개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7,511개)보다 300개나 증가한 수치로, 전년에 비해서도 99개나 늘었다. 임직원 수 역시 전년보다 2,000명 가까이 증가했다. 은행들은 금융위기 직후 구조조정을 통해 영업점을 줄이고 임직원을 감축하며 군살 빼기에 주력했으나 은행 간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시 점포수가 증가한 것이다. 전국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농협금융이 생기고, 하나금융이 외환은행까지 인수하면서 각 은행들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점포수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는 저성장ㆍ저금리에 따른 은행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고 있어 일부 은행을 중심으로 이미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20여개 점포를 연내 폐쇄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 같은 은행권의 다운사이징 움직임은 효율성을 높인다고 개설한 '스마트 브랜치'가 기대했던 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도 주 요인이다. 스마트 브랜치가 27개로 가장 많은 씨티은행의 경우도 올해 더 이상 증설하지 않을 방침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점포 근무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스마트 브랜치 등 이색점포가 기존 점포를 대처해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지만 주로 젊은 층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일반 점포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생긴지 얼마 안돼 당장 폐쇄는 안되겠지만 일반 점포가 축소된 이후에는 이색 점포도 구조조정 대상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렇다고 은행 입장에선 무작정 점포수 줄이기에 나설 수도 없다. 기업은행이 2008년(567개)에 비해 지난해 점포수를 40여개 늘린 덕택에 총여신을 40조원 이상 늘린 것처럼 점포수와 영업력은 비례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영화를 추진중인 산업은행 등이 올해 소매금융 확충을 선언하며 점포수 확장에 나서 다른 은행들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산업은행은 점포 증설에 따른 비용절감을 위해 계열사인 대우증권 점포 안에 신규점포를 개설하는 복합점포(BIBㆍBranch In Branch)전략을 펴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개설비용 절약은 물론이고 고객 유치에 있어서도 대우증권과 상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점포 확장 대신 영업시간을 지역특성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하거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확충) 등 실속형 점포 확장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올해 경영여건이 좋지 않은데다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아 각 은행들은 점포개설보다는 다양한 영업전략을 마련하는데 치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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