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범 이후 박근혜 당선인의 발언을 통해 '근혜노믹스'의 초반 항로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대선 기간 중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던 '경제민주화'가 우선순위에서 점차 밀려나고, 대신 '경기 진작'과 중소기업ㆍ자영업을 옥죄는 '기존 관행 개선'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당장은 MB노믹스의 실책을 부각시켜 차별화를 꾀하면서 논란이 클 경제민주화 관련 개혁 작업은 시간을 두고 해결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당선인은 다변(多辯)을 피하고 최대한 준비된 표현으로 대중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정치인이다. 최근 인수위원들과의 만남, 현장방문 자리에서도 예외 없이 그만의 '키워드'들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먼저 들고나온 키워드는 '경제부흥'. 박 당선인은 7일 인수위원들과의 첫 회의 자리에서 "국민안정과 경제부흥을 국정운영의 중심축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성장에 방점을 둔 경제부흥은 공생을 강조하는 경제민주화와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현 경기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면서 한편으론 경제민주화가 당장의 우선순위는 아니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실제 박 당선인은 대선 직전부터 부쩍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언급을 줄여왔다. 박 당선인은 9일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따뜻한 성장'이라는 표현으로 다시 한번 성장을 언급했다.
중소기업의 권고를 빌어 말한 '손톱 밑 가시'라는 표현은 MB정부 초기 화제를 모았던 '규제 전봇대'를 연상시킨다. 모두 전시성 정책보다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할 체감형 정책을 강조한 말이지만 어감은 사뭇 다르다.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매크로 위주였던 MB정부의 기조와는 달리, 여성 대통령의 자상함을 부각시킨 측면이 있다"며 "경제발전의 주체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변화를 준 것이 눈에 띈다"고 해석했다.
박 당선인은 인수위에 "새 정책을 생산하는 대신 전 정부의 무엇을 고치고 어떤 것을 이어갈 지 고민해 달라"고도 당부했다. 숱한 대형 정책을 쏟아내던 5년 전 인수위와 달리, 우선 정권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개선점을 찾되 박근혜만의 색깔은 서서히 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때문에 각종 경제민주화 조치들은 뒤로 밀리는 분위기다. 김종인 전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장 등 경제민주화 강조론자들이 인수위에서 대거 빠진데다, 당선인마저 개혁보다는 '개선'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경제민주화가 차츰 성장으로, 불공정행위 근절 방침은 점점 당부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개혁조치들이 연기되는 느낌"이라며 "아직 예단할 단계는 아니지만 출범 첫해 어려운 경제 상황을 이유로 개혁을 미루다 끝내 성과를 내지 못했던 과거 정권의 실패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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