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가 동남아로 사실상 확정됐다. 취임 직후부터 추진한 미국 방문이 불가능해지면서 생긴 정치 공백을 메우면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과 협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8일 교도(共同)통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달 중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3개국 순방을 검토 중이다. 아베 총리가 이들 국가를 첫 해외 순방지로 택한 것은 최근 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중국과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ㆍ釣魚島)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일본은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중국과 영토 갈등을 빚고 있는 이들 국가와 연대를 돈독히 해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구상은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과도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어 일본에서 민주당이 집권한 이후 소홀해진 대미관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아베 총리는 판단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동남아 순방은 일본 경제 회생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대 중국 수출 감소를 타개하기 위해 신흥 시장을 창출한다는 측면도 있다. 아베 총리가 지난달 28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6개국 정상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협력을 다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성 장관도 9일부터 필리핀,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을 방문한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취임 직전부터 추진한 1월 중 미국 방문은 어렵게 됐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7일 가와이 지카오(河相周夫) 외무성 사무차관을 미국 워싱턴에 급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일정 조율에 들어갔다. 가와이 차관은 이날 윌리엄 번스 국무부 부장관 등 미국 정부 고위인사와 잇따라 회담하며 아베 총리의 의향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식과 국정연설을 준비해야 하는 등 일정이 빡빡하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와이 차관은 "2월 이후라도 방미 실현을 위해 계속 조정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월 방미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TV아사히(朝日)에 따르면 미국은 아베 총리의 방미 조건으로 일본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참가를 요구하고 있지만 자민당 내에서조차 반대가 많아 아베 총리가 이 문제를 쉽게 거론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TPP에 반대하는 자민당의 중진 의원은 "선거 기간 유권자들에게 TPP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 와서 찬성으로 돌아서는 것은 배신행위"라고 주장했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취임 직전부터 첫 해외 방문지로 미국을 거론했지만 성사되지 않아 적잖은 체면을 구기게 됐다"고 전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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