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 2013년 대한민국의 경제전망은 대체로 암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새해 예산 중 복지예산 규모가 사실상 100조원을 넘어섰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복지 재원 조성 방안으로 이른바 '증세 없는 증세'를 표방했다. 한마디로, 세율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비과세 혜택은 줄이고, 고소득자에 대한 세감면액을 제한하면서, 대기업의 최저한세율 인상과 대주주 양도차익 과세 등으로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로 마련할 수 있는 재원은 고작 연간 5,000억원 내지 6,000억원 정도로, 박 당선인의 복지공약 구현에 소요되는 연간 10조원의 5%내지 6% 수준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결국 박 당선인이 추가적인 증세 없이 복지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선 공공부문에 대한 과감한 혁신을 통해 복지재원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공공부문에 대한 과감한 혁신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유는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방만한 운영과 도덕적 해이, 그리고 부패 문제로 인해 국가의 자원이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불필요한 사업 수행으로 인한 과도한 부채와 이자부담이 없었다면 박근혜 정부가 필요로 하는 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방만한 운영과 더불어 공공부문의 부패와 도덕적 해이는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할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의 책임성 측면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자산규모가 수 조원에 달하는 공기업 임직원들이 기업들로부터 수 천 만원에 달하는 로비 자금을 받아 총리실 감사에 적발된 사례도 많다. 2012년 국정감사에서는 노사가 문서를 위조하여 400%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하거나, 타당한 근거 없이 임원 수를 대폭 늘린 사례를 비롯하여 심지어 전문기술을 이용하여 절도행각을 벌인 사례까지 적발되었다.
최근 유로존이 재정위기에 직면하면서 선진국들은 정부를 포함한 공공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미 일부 선진국들은 유로존이 재정위기를 겪기 이전부터 공공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지속해 왔다. 2000년대 초반 네덜란드도 수 만 개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정리해고하고 임금을 동결하여 정부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반면 공공지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공무원 인력을 5만 명 가까이 증원하면서도 임금삭감과 연금축소, 그리고 공공부문 감축과 같은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경시한 그리스 정부는 심각한 재정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출규모의 증가는 불가피한데, 공공부문에 대한 과감한 혁신을 통해 복지재원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정부재정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건전한 수준에 속하는 편이다. 하지만, 공공부문에 대한 과감한 혁신을 통한 재원확보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경우 우리나라도 그리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재정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1997년 금융위기 당시 우리 민간 부문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당시 직장을 잃은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실직상태에 있거나 비정규직 혹은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요즘 상장 건설사 2곳 중 1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갚을 정도이고, 거리에는 취업만 한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젊은이가 넘치고 있다. 노인 자살률은 10만명 당 81.9명의 세계 최고 수준으로, 미국 14.5명의 5배가 넘는다. 그러나 재무제표상 부채가 773조원에 달하는 공공부문은 망할 수 없기 때문인지, 엄청난 부채를 지고도 물론 일부이지만 비리나 횡령 같은 부패 행위와 남는 예산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 추가적인 세수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예산은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새롭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재정위기에 이제 공공부문이 고통분담에 나설 때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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