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역 중1 시험 폐지 문제로 교육계가 시끄럽다. 선거때 이를 공약한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자신을 지지했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보수 성향 교육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자 "지필평가 중심의 시험 부담을 줄이고 진로탐색을 집중적으로 하자는 취지"라며 한발 물러섰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문 교육감이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를 운영할 시범학교를 선정하기로 한 만큼,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지필시험 폐지가 핫이슈가 된 건 처음이 아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2011년 학생들을 시험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전인교육을 하겠다는 목적에서 초등 중간ㆍ기말고사 폐지를 추진했으나 유야무야 됐었다. 입시 체제는 그대로 두고 초등 시험만 없앤다면 사교육 의존도를 더욱 키우고, 학교 현장의 혼란은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중1 시험 폐지 역시 이념적인 논쟁까지 가세하면서 학력 저하(보수)와 전인교육(진보)의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
황영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육정책연구소장은 중1 시험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잘 한 것은 더 잘하도록 하게 하고 부족한 건 채워주는 기능을 하는 게 시험"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시험 폐지가 아니라 시험 부담 완화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성보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실장은 당장 폐지를 주장했다. 김 실장은 "학습능력은 자발적인 학습의지를 가질 때 극대화 되는 법"이라며 "학력향상, 학교폭력, 자살 등 우리 교육의 비극적 현실을 해결하려면 시험 폐지와 함께 성적순 줄 세우기식 경쟁교육을 지양해야 옳다"고 말했다.
"성적순 줄세우기의 교육적 병폐 막대… 진로탐색 등 거치며 학습의지도 높아져"
●찬성 김성보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실장
문용린교육감 말바꾸기에 실망
감성지수·갈등해결능력 배양이 21세기형 전인교육에도 부합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은 보수를 대표한 문용린 후보의 '중1 시험 폐지' 공약이었다. '중1시험 폐지'라는 선거공약은 그의 향후 정책에 일말의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달 27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를 방문한 문 교육감은 "중 1때 시험은 있지만 진로탐색을 집중적으로 하자는 취지"라며 잉크도 마르기 전에 자신의 말을 바꿨다.
우리나라 교육 병폐에 대한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생들은 높은 성적을 받아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진학하는 것을 가장 큰 성공으로 삼고,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는 학부모들 역시 성적만 좋으면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어 '부모'가 아닌 '학부모'가 되어버리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갈등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기 인생의 적어도 12년을 미래를 위해 저당 잡힌 채 즐거움이 없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길 강요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은 자기보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왕따나 학교폭력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
이런 우리교육의 비극적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시에 종속되어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경쟁교육으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교육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 국영수 편식증에서 벗어나 문예체 교육 강화로 감성지수를 높이고,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배우며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고,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발견해 가면서 스스로의 진로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전인교육이라는 교육 본래의 목적에도 부합하는 것일 뿐 아니라 '협동적 문제 해결 능력'과 '생태 감수성' 등을 2015년 새로운 평가지표로 제시한 PISA(국제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의 21세기형 교육목표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 교육감이 약속한 '중1시험 폐지'는 이런 점에서 볼 때 대단히 환영할 만한 정책이었다. 초등학교와는 전혀 다른 교육과정과 갑자기 어려워진 교육내용 등에 적응하기도 전에 일제고사 식 시험의 부담에 시달려야 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교육환경에 적응하고, 자신의 진로를 탐색할 시간을 주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긍정적일 뿐 아니라, 보다 높은 학습능력을 키우기 위한 안정적인 학습 환경을 제공해 주게 될 것이다.
교육계 일부에서는 '중1시험 폐지'가 아이들의 학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문 교육감의 정책이 현실화 된다면 오히려 아이들의 학력이 더 향상될 수 있는 조건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학습능력은 자발적인 학습 의지를 가질 때 극대화되고, 공부해야 할 목표가 분명해 질수록 자발적인 학습의지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시험이 없어지면 학력이 저하될 것을 염려하는 이들은 우리나라 교육이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평가(시험)의 교육적 목적은 아이들을 줄 세우기 경쟁에 밀어 넣어 도태되지 않으려 공부하도록 강제하는 것에 있지 않다. 평가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학습 목표가 제대로 체화되었는지, 아이들이 어려워하고 막힌 부분은 어디인지를 찾아내 보다 완전한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교육과정의 일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교육제도 안에서는 이러한 평가의 애초 목적이 오래 전에 실종됐다.
그래서 문 교육감의 '중1 시험 폐지' 공약은 평가의 본래 목적을 되살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가 비록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후보였지만 교육학자로서 그가 주창했던 '행복교육'의 정책적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다.
문 교육감의 말 뒤집기와 공약 철회가 더 안타깝고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취임 불과 3주째다. 이제라도 문 교육감이 자신의 공약을 책임 있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서 무너진 우리 교육에 회생의 숨통이 트일 수 있기를 바란다.
"시험은 부족한 점 보완하는 피드백 기능… 기초학력 형성기 폐지보다 완화가 해법"
●반대 황영남 한국교총 교육정책연구소장
전체적 학력저하 부작용 초래
사교육 레벨테스트 기승 우려도
여론 수렴 등 단계적 접근 필요
학교는 인생의 지혜를 배우는 곳이자 공부하는 곳이다. 학교에서 학생이 잘 배웠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시험이다. 시험은 학생이 잘한 것은 더 잘하게, 부족한 것은 채워주는 피드백 등 교육의 중요한 활동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이러한 학생평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 이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물론 우리 교육은 입시경쟁, 선행학습으로 대표되는 과잉학습, 지나친 학습부담의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만족도나 흥미는 최하위 수준이라는 현실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시험부담을 완화하는 노력과 정책은 필요하다. 교육학자이자 교육부장관 출신인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의 '중1시험 폐지' 공약도 평가의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외면해서가 아니며, 학생들의 시험부담 완화를 통해 쉼표 있는 시간을 갖고 진로탐색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우리 교육의 방향이 '학력 중심'에서 '인성 중심'으로, '진학 중심'에서 '진로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대전제는 당연히 공감한다. 그러나 '중1 시험 폐지'라는 용어가 갖는 극단성으로 인해 평가에 대한 교육적, 사회적 부정 여론 확산은 물론 학교현장과 학생, 학부모의 우려와 혼란이 있을 수 있다. 중1 시험 폐지 논란과 관련하여 몇 가지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많은 학부모는 지금보다 학교가 공부를 더 잘 시켜주길 바라고 있다. 따라서 기초학력 형성시기인 중학교 1학년의 시험 폐지가 학력 저하로 이어지거나 단지 '노는 학년'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와 학원에 힘든 아이들이 중1 동안 시험 안 본다고 학력이 크게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지나친 기우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초중고 학생 대상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서울 지역의 기초학력 미달비율이 3.3%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지역 학생들의 강ㆍ남북간, 부모의 사회ㆍ경제적 지위에 따른 교육격차 또한 크므로 시험폐지와 완화가 가져올 교육격차 효과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둘째, 사교육 의존도의 심화를 가져오게 해서는 안 된다. 많은 학부모들은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자녀의 학업성취 수준이 다른 아이와 비교해 볼 때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초등학생 때는 서술식 평가로 자녀의 수준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지만 중1이 되면 고입, 나아가 대입을 염두에 두고 자녀의 학력수준을 궁금해 한다. 이러한 궁금증을 학교에서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흔히 말하는 사교육시장의 '레벨테스트'에 의존하는 경향성이 심화될 수 있다.
셋째, 고입전형과 교육과정, 평가방식의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 현재는 고입에 중 2, 3학년 내신만 반영되지만, 올해 입학한 중1학년생부터는 전 학년 성적이 반영된다. 또한 현재 시행되는 중학교 집중이수제로 인해 학교별, 교과별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를 감안하여 학년별 교과 편성 문제, 고입에 어떻게 성적을 산출할 것인지 모형이 구완돼야 하며, 교과부 훈령인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이 먼저 개정돼야 하는 과제 또한 있다.
문 교육감이 이러한 교육계의 우려에 대해, 교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시험을 안 보는 것이 아니라 평가 방법을 개선, 지필평가 중심의 시험 부담을 줄이고, 학생들이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는 '중1 진로탐색집중학년제'를 운영한다는 의미다"라고 밝힌 점은 매우 바람직하다. 중1시험 폐지는 충분한 학교현장의 여론 수렴과 시범학교 운영 등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학壎湧?진로모색과 직업탐구를 위해 1974년 도입된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도 기업 및 지역사회의 인프라 구축에 40여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우리도 지역 연계 등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이 선결과제다. 시험부담은 완화하되 시험은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한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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