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시장경제 전환을 서두르던 러시아는 미국과 독일을 동시에 쳐다봤다. 낡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시장경제 체제로 개혁하는 데 누구의 조언과 지도를 받을 것인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미국 쪽은 진보적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를 멘토로 내세워 미국식 자유시장경제로의 급진개혁을 유인했다. 이에 맞서 독일은 연방은행 분데스방크의 전직 부총재를 앞세워 국가의 개입과 관리를 축으로 삼는 사회적 시장경제로의 점진적 개혁을 설득했다.
■ 이 멘토 경쟁은 IMF와 세계은행의 대규모 지원을 미끼로 삼은 미국 쪽이 이겼다. 옐친 대통령 정부는 물가와 임금 자유화, 국영기업 민영화 등의 급진개혁을 채택했다. 그러나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보수적 관료와 국영기업들은 개혁 개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시장과 가격체제 개혁도 성과 없이 혼란을 불렀다. 경제 사유화에 따른 부패 등 병리현상이 가중되면서 러시아 경제는 추락을 거듭해 결국 모라토리움에 이르렀다.
■ '경제 강성대국' 건설을 추진한다는 북한이 독일을 멘토로 삼았다는 뉴스가 관심을 끈다. 독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에 따르면 올해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결정적 전환'을 이루겠다고 선언한 북한은 독일 학자와 법률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개혁 개방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 핵심인 대외 경제개방 정책은 중국식 경제특구 정책이 아니라, 정부가 외국 투자기업을 선정하고 관리하는 베트남식이 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지난해 8월 하노이를 방문, 베트남 총리와의 회담에서 "사회ㆍ경제 건설과 개발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비춰 FAZ 보도는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독일은 통일 직후 동독의 국영기업 민영화를 설계, 관리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독일식이든 실질적인 경제체제 전환의지를 갖고 있는지 여부다. 그게 없다면 '독일 멘토'도 별로 쓸모없을 것이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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