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 열리는 '페스티벌 봄'은 무용 연극 미술 음악 영화 등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드는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국내외 작품 20여 편을 소개하는 국제 다원예술 축제다. 올해는 3월 22일부터 4월 18일까지 열린다. 정부 지원금이 2억원이 채 안 되는 소규모로 진행되고 이번이 7회째로 역사도 짧지만 국내 유일의 다원예술 축제로 꽤 두터운 마니아 팬을 확보하고 있다. 전문가 집단의 반향도 커 독일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자본론'(2009), 독일 극단 쉬쉬팝의 '유서'(2012) 등은 연극 전문가들이 뽑은 그 해의 해외 우수 공연으로 뽑히기도 했다.
축제의 이 같은 독특한 행보의 중심에는 김성희(46) 예술감독이 있다. 초청할 작가와 작품을 선별하고 필요한 예산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게 그의 업무다. 7일 만난 그는 "비주류의 스펙트럼이 넓을수록 문화 선진국"이라며 "한국의 문화예술이 단 1%의 관객만 원하는 모호한 작품부터 대중성을 지향하는 상업예술까지 잘게 나뉠 수 있도록 동시대 예술을 보다 널리 알리고 싶다"고 '페스티벌 봄'을 만든 동기를 밝혔다. '페스티벌 봄'이라는 이름에는 축제가 열리는 계절을 알리는 의미도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충돌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5세 때 무용을 시작해 이화여대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무용수였던 그는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2000년 뉴욕대에서 예술경영 석사를 마치고 귀국한 후 2002년부터 4년간 국제 현대무용축제 '모다페(MODAFE)'에서 프로그램 기획을 맡았다. 2007년 큐레이터인 김성원 국립서울과학기술대 교수와 함께 '페스티벌 봄'의 전신인 '스프링 웨이브'를 만들었다. 2008년부터는 독자적으로 '페스티벌 봄'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꾸리고 있다.
"탈장르의 동시대 예술이 폭넓게 사랑 받고 있는 서구사회의 예술현장을 경험하다 귀국해 충격이 컸어요. 한국은 여전히 셰익스피어와 같은 고전적 예술이 대세여서 소위 컨템포러리(contemporary) 예술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죠."
특히 그가 믿는 예술의 동시대성은 사전적 의미의 현존하는 예술이 아닌 앞으로 전개될 어떤 흐름을 읽고 새로운 길을 내는 작업이다. 연중 수많은 축제가 열리는 한국에서 이 같은 동시대성을 표방하는 문화예술 축제가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든 게 바로 '페스티벌 봄'이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서구사회가 쥐고 있는 문화예술 흐름의 주도권을 아시아로 옮겨 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제가 유럽 작품 초청에 너무 치중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일단 게임의 법칙을 알아야 링 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아시아 작가의 차별성을 알리려면 그들이 뭘 선호하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먼저 파악해야 하잖아요."
그는 또 "이미 일부 해외 프로듀서들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 중국, 인도 등 아시아로 이동하는 데 발맞춰 아시아의 동시대 예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국적이고 동양적인 아시아 예술에 열광한 것은 딱 1980년대까지의 이야기죠. 그런데 정작 아시아에 와 보면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아시아 작가의 동시대 예술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프로듀서들이 많아요."
그의 이런 믿음 덕분인지 꾸준히 '페스티벌 봄'에 참여한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은 최근 해외 예술계의 러브콜을 잇달아 받고 있다. 미술과 연극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주로 하는 홍성민씨는 내년 비엔나 페스티벌에서 신작을 선보인다. 극장을 벗어나 실제 공간을 재구성하는 '장소 특정적' 퍼포먼스로 유명한 서현석씨는 올 가을 일본에서 요코하마 이자요이 극장 초청으로 신작을 올린다.
'페스티벌 봄'은 적은 예산으로 지명도 있는 해외 작품을 초청하는 축제로도 유명하다.동시대성, 즉 아직 도래하지 않은 흐름을 추구하는 그가 일찍부터 세계 공연계의 거목과 인맥을 쌓아 온 덕분이다. 올해 초청작인 이탈리아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트에 대하여'나 프랑스 안무가 제롬 벨의 '장애극장' 등도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소개하게 됐다.
계원예술디자인대학 조교수이기도 한 그는 공연 관람과 회의를 위해 자비까지 보태가며 연중 2개월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지만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만 따진다면 고된 일이죠. 예산 구하러 다니는 것도 힘들고. 하지만 동시대 예술가들이 주는 무한한 에너지와 지식과 아이디어, 영감을 생각하면 자족감은 100%가 뭐에요, 180%인 것 같은데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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