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애슬론(철인 3종)은 철저히 혼자다. 수영(1.5㎞)과 사이클(40㎞), 달리기(10㎞)를 한 번에 모두 소화하려면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그래서 외롭다.
하지만 한국 트라이애슬론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은 허민호(23ㆍ서울시청)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 매일 뛰고,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한다. 많은 훈련량과 반복되는 훈련이 지겨울 법도 한데 늘 해맑다. 지난달 28일 만난 허민호는 '철인'이라기 보다 20대의 순수한 청년 그 자체였다.
'내일'을 달린 아름다운 꼴찌
허민호는 지난해 한국 트라이애슬론 역사를 새로 썼다. 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ITU)의 올림픽 랭킹 점수에 따라 55명만 참가할 수 있는 출전 티켓을 자력으로 따냈다. 그러나 런던올림픽 결과는 1시간54분30초로 전체 55명 중 54등. 한 명이 경기 도중 기권했으니 사실상 꼴찌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았다. 내일을 향한 레이스를 펼쳤기 때문이다.
"2012년은 큰 수확을 거둔 한 해였어요. 세계적인 선수가 총출동하고, 관중이 많은 올림픽에서 경험을 쌓았다는 자체가 기뻤어요. 사실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에 집중하지 못해 어려움도 있었죠. 그렇다고 후회는 안 합니다. 앞으로 더 잘하면 되니깐요."
허민호는 올림픽 출전 선수 중 가장 어렸다. 체력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레이스 운영 능력이 떨어지면 고전할 수밖에 없다. 트라이애슬론 선수들은 대개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 사이 전성기를 맞는다.
"아직 20대 초반이니까 올림픽에 세 번은 더 나갈 수 있어요. 차근차근 기량을 쌓아 반드시 정상에 서고 싶습니다."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허민호의 하루 훈련 일정은 빡빡하다. 새벽, 오전, 오후 또는 오전, 오후, 야간으로 나뉘어 세 종목을 두루 훈련한다. 수영은 기본적으로 5㎞를 하고, 사이클은 70~80㎞ 정도를 탄다. 일주일에 한번은 120~130㎞ 장거리를 소화한다. 달리기는 보통 15㎞를 뛴다. 장거리를 뛸 때는 25㎞까지 달린다. 그야말로 철인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스케줄이다.
"훈련 강도가 구토가 나올 만큼 힘들어요. 신기한 건 매번 힘든 훈련을 하고도 숙소에 돌아오면 또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럴 때 '내가 정말 철인이구나'라고 느껴요. 진천 선수촌에서 훈련할 당시에는 다른 종목 코치님들이 훈련량을 보고 놀라더라고요. 그래서 어깨를 당당히 펴고 선수촌 생활을 했죠."
허민호는 많은 훈련을 하면서도 부상과 거리가 멀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선발전 당시 허벅지를 다쳐 6개월 동안 통증이 지속된 것을 빼곤 큰 이상이 없었다.
"아픈 상태에서도 뛰어 다행히 대표팀에 뽑혔어요. 다소 무리한 탓에 통증이 더 심해지는 건 아닌가 했지만 재활을 하면서 계속 훈련을 했더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다 나았어요. 역시 조금이라도 쉬는 건 제 체질이 아닌가 봐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그리고 2016 리우 올림픽 금메달 정조준
허민호는 어렸을 때부터 목표가 뚜렷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장래 희망에 '철인 3종 선수'를 적었다. 이후엔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적었다. 허민호는 자신이 꿈꿨던 방향대로 한발한발 나아가고 있다.
"올해에는 국제대회에 많은 신경을 쓸 거예요. 월드컵에서는 1차적으로 10위 안에 들 수 있도록 하고, 그 다음은 메달권 진입도 바라보고 있어요. 물론 국내 대회에서는 모두 다 우승하고 싶어요."
허민호가 올림픽 못지 않게 중점을 두고 있는 대회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다. 허민호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5위를 차지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은 자신 있어요. 일본 선수들의 기량은 떨어지고 있는 반면 한국 선수들은 올라가고 있어요. 또 익숙한 환경에서 하니까 홈 어드밴티지를 잘 살려야죠. 그리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금메달로 제 전성기를 꽃 피우고 싶습니다. 요즘 트라이애슬론을 하는 어린 선수들이 많이 줄었어요. 힘든 걸 알고 시작부터 겁내더라고요. 한국 트라이애슬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책임감을 갖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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