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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의 사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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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의 사실주의

입력
2013.01.0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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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화가의 한 붕어빵 포장마차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감탄이 나왔다. 길거리 간식의 진화는 나날이 놀랍기만 하다. 통팥 외에 슈크림 옵션을 두는 정도가 아니다. 준비된 속재료의 종류가 무려 예닐곱 가지도 넘는다. 햄. 치즈. 불고기. 피자. 참치 등등.

똑같은 목도리를 둘둘 만 앳된 커플이 치즈 붕어빵과 불고기 붕어빵을 샀다. "붕어빵 속엔 붕어가 없는 게 아니라 붕어만 없네?" 남자가 말하자 여자는 살짝 눈을 흘기며 받아쳤다. "뭐야. 별로 안 웃겨." 대신 내가 조금 웃었다. 하긴, 붕어빵 속엔 붕어가 없어야 한다. 붕어 뱃속에 붕어알이 아니라 붕어가 있는 건 아무려나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 가게의 속재료들도 은근히 엽기적인 데가 있다. 붕어빵 속의 참치와 붕어빵 속의 불고기라. 손바닥만한 붕어가 사람 키만한 참치와 봉고차만한 소를 소화시킨 꼴이다. 왠지 개가 보신탕을 먹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의 그림이 어른거리기도 한다.

골라먹는 재미 앞에서 뭘 고를까 망설이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못 고르고 다른 길목에서 오리지널 붕어빵 한 봉지를 샀다. 한 마리를 꺼내 머리를 베어 물었다. 역시 붕어빵 속엔 통팥이 제격인가 생각하려는 찰나, 검붉은 팥이 물큰하게 손가락에 묻는다. 참치와 불고기를 소화시킨 붕어 뱃속을 그려본 터라 이번엔 피 묻은 붕어 내장이 떠오른다. 뜬금없이 붕어빵의 사실주의를 저작하는 시간이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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