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추위로 인해 아슬아슬한 전력사정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 10위 전후의 경제선진국인 한국에서 매일매일 블랙아웃(대정전)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결국은 에너지를 펑펑 쓰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에너지가 얼마나 낭비되고 있는지, 왜 에너지를 아껴야만 하는지 3회에 걸쳐 집중 점검한다.
"다음부턴 문 열고 난방기를 틀면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정부 합동단속반 관계자)
"왜 영업을 방해하고 그러세요. 나가세요, 나가시라고요."(명동 일대 매장 관계자)
동절기 전력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에너지사용제한조치 첫 단속에 돌입한 7일 오후 4시. 지식경제부, 서울시, 중구청, 에너지관리공단 직원 35명으로 구성된 합동단속반 4개 팀이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명동 상가밀집지역을 대상으로 대대적 현장점검에 나섰다. 주요 단속대상은 ▦난방기를 튼 채 문을 열고 영업하는 행위와 ▦대형건물이 실내온도를 20도 이하로 유지하는지 여부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단속반 눈치보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지난 여름 단속에 따른 '학습효과'때문인지, 대다수 의류 및 화장품 매장들은 문을 닫은 채 영업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매장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출입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배짱영업 중이었다. 특히 "문 닫으면 손님들이 장사를 안 하는 줄 안다"며 단속반을 밀쳐 내는 등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단속반이 한 은행건물로 들어가 실내온도를 측정했더니, 정부 권고기준인 20도를 웃돌았다. 대형건물 내 에스컬레이터는 타는 사람이 없어도 쉼 없이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었다. 단속에 참여한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전기를 아껴 써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라"며 "사실 경기가 어려워 장사도 안 된다고 하는데 단속하는 우리 입장에서도 난감할 때가 많다"고 답답해 했다.
오는 2월22일까지 계속되는 에너지사용제한조치 단속은 첫날인 이날 경고 처분만 내렸지만, 앞으로 이를 어길 경우 ▦1회 50만원 ▦2회 100만원 ▦3회 200만원 ▦4회 이상이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여름 한달 간 명동 일대에서 진행된 에너지 단속결과, 실제로 과태료가 부과된 건 고작 3건에 금액으론 150만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일부 상인들은 "문 열고 장사해서 손님을 받는 게 과태료 내는 것보다 훨씬 이익"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단속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과태료를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슷한 시각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강남역 일대 사정도 마찬가지. 강남구청 환경과 소속 단속반원 2명이 한 외국계 은행에 들어섰다. 은행 내부 3곳에서 실내온도를 측정해 봤더니, 모두 21도 이상을 가리켰다. 단속반원이 경고장을 발부하자 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이 춥다고 항의하면 어떻게 하냐"고 항의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오후 5시. 이 시간부터 7시까지는 오후 전력 피크시간 대이기 때문에 화려한 조명의 네온사인 사용이 금지된다. 단, 옥외광고물이 모두 네온사인인 경우 1개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단속과정에서 업주들의 반발도 거셌다. 한 유흥업소 관계자는 "앞이 컴컴하다 보면 손님이 한 명도 안 들어 오는데 네온사인 단속은 문을 닫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며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7배나 높다. 1인당 전력소비량 역시 일본의 3배, 미국의 2배에 달하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단속만으론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전기를 많이 쓰는지 범 국가적인 관심과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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