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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크기 강박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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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크기 강박증

입력
2013.01.0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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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릇이 작아서 그래요."

일을 하다가 힘이 붙이거나, 사회에서 인간관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사람들과 진지한 상담을 하다보면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다른 사람은 척척 잘 해내고, 똑같이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도 잘 버텨나가는데, 유독 자신만 버거워하고 견디지 못한다고 여긴다. 처음에는 일이 너무 많거나, 독한 사람에게 잘못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한 두 번 반복되면서 버틸 힘도 더 이상 없는 상태가 되어서는 결국 '내 문제'로 귀결된다. 내 그릇이 훨씬 컸다면 충분히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안 되서 이런 사단이 난 것이라고 말이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얘기하는 것이 더 강해지고 효율적으로 일을 해내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다가, 요새는 힐링 멘토들이 나서서 "네가 욕심과 집착을 다 내려놓고 비우면 해결된다"고 한다. 내가 못나서 일을 제대로 못하고, 그릇이 쬐그매서 작은 욕심에 눈이 멀고 놓지를 못해서 허덕이고 있다는 얘기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소망한다. 나란 사람의 그릇이 커지기를. 그런데 바라는 그릇의 크기가 요새 정여사 식으로 말하면 "커도 너-무 커"다. 커피 컵 크기의 사람이 냉면 그릇이 되기를 원한다. 세상은 정규분포곡선의 법칙을 따른다. 종모양의 곡선의 가운데 토막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들어있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거의 모든 마음의 그릇의 크기는 컵이다. 거기서 위아래로 20% 정도의 크기 차이가 있는 정도다. 지능지수에서 아주 소수의 천재가 있지만 대부분은 보통 수준에서 모여있는 것과 같다. 그렇듯이 아주 소수의 냉면대접이나 욕조크기의 대인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는 확률적으로 극히 소수이고, 안타깝지만 타고난 사람들이지 만들어진 경우는 드물다. 아이가 매일 우유를 1리터씩 먹는다고 해서 최홍만이나 하승진 같은 키로 자랄 수 없는 것과 같다.

결국 우리가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그릇크기의 증가는 10% 남짓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것이 가능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지향하는 목적지가 냉면대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리어 우리가 감사해야하는 것은 타고나게 소주잔만큼 작은 그릇이라 사소한 일도 견디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고, 좌충우돌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그릇이었다면 이 험한 세상에서 지금것 버텨오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삶에 지쳐 허덕이며 그릇이 크지 못한 탓이라고 한탄을 하고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현실적 수준으로 목표를 수정하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 좋다. 그릇크기에 대한 강박을 버리는 것이 먼저다. 난 지금 요만큼의 한 잔의 컵이다. 나 뿐 아니라 내 주변의 모두가 조건은 같다. 이제 내 컵안을 들여다봐라. 얼음이 들어있는 머그잔에는 물을 조금만 부어도 바로 차올라온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마음에 걸려있는 얼음덩어리가 있다면 그걸 꺼내야는 것만으로도 물이 들어갈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누구나 자잘한 얼음덩어리를 컵안에 두고 살고 있다. 세 번째, 그릇의 질감을 바꿀 수 있다. 양은냄비에 물을 끓여보자. 물이 비등점을 넘어서면 냄비는 물과 함께 들썩들썩 하고, 물을 가득 담았다가는 넘치기 쉽다. 같은 용량의 그릇이라도 뚝배기는 어떤가. 물이 끓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야 보글거리는 물방울을 보고 알 수 있다. 이걸 화가 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자.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니, 화를 낼때에는 내야 건강하다. 화가 날 때 그릇 전체가 들썩거리는 것보다는 뚝배기같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나만 알 수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우리가 실현가능한 그릇의 완성은 무한정한 크기의 확장이 아니라 질감의 변화다. 양은그릇같은 마음이 뚝배기의 두꺼운 질감으로 전환해서 쉽게 달아오르지도 않고, 한 번 데워진 그릇이 따뜻한 온기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그릇크기의 강박에서 벗어나 삶에서 지향할 마음수련의 태도다. 한 뚝배기 되보실라예?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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