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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力道山)의 운명과 한국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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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力道山)의 운명과 한국 방문

입력
2013.01.0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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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월8일 오전 10시40분, 김포공항 활주로에 대만 민간항공사의 CAT 여객기가 내려섰다. 잠시 후 키 180cm에 130kg이 넘는 거구의 사나이가 검은 싱글을 입고 내려섰고, 수많은 환영인파와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재일동포이자 당시 일본에서 일왕 다음으로 유명하다는 프로레슬링 영웅 역도산이었다.

역도산은 24년 11월4일 함경남도 흥원군에서 태어났다. 한국이름은 김신락. 40년 조선 씨름대회에서 우승하고 이를 눈여겨본 일본 형사의 권유로 현해탄을 건넌다. 일본에 귀화해 41년부터 리키도산이란 선수명으로 활동하며 스모계를 평정하기 시작했다. 승승장구하던 역도산은 25세 때 3위급인 세키와케의 지위까지 오르며 실질적인 스모 황제가 되었으나 1위에 오를 수는 없었다. 최고자리인 요코즈나는 일본인이 아니면 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이에 반발해 스모계를 은퇴한 역도산은 51년, 세계적인 프로레슬러 보비 브란스의 일본 원정경기를 계기로 레슬링으로 전향하기로 결심한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한 그는 로스앤젤레스와 하와이에서 경기를 치르며 큰 몸집과 황소 같은 힘으로 내리치는 손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도미 1년 만에 일본으로 귀국한 역도산은 이미 영웅이 되어 있었다. 패전 후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프로레슬링은 최고의 이벤트였다.

미국 프로레슬러가 일본 선수를 연방 두들겨 패다가 구세주처럼 등장한 역도산에 의해 그의 주무기인 '가라데 촙'으로 상대를 때려눕히면 일본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이곤 했다.

54년 12월 역도산은 일본 유도선수 출신으로 무적이라 일컬어지던 기무라와 일전을 벌여 승리를 거뒀고 58년에는 세계선수권자인 J.S 루테스를 물리쳐 헤비급 세계챔피언을 따냈다. 치솟은 인기와 함께 부까지 거머진 그는 자연스레 일본 국민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63년 1월10일, 박경일 문교부장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역도산은 2주간 체류하며 판문점을 방문했고 기자회견을 통해 스포츠센터 건립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역도산은 그 해 12월8일 아카사카 산노시타의 나이트클럽에서 야쿠자의 칼에 찔리고 만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역도산은 북한이 민족의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으며 그의 외손녀인 박혜정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여자역도 감독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차남인 모모타 미쓰오는 일본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 중이다. 2004년에는 그의 일생을 담은 한일합작영화 '역도산'이 설경구 주연으로 만들어져 개봉됐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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