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에 내려 급하게 화장실을 찾았다. 아무래도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던 것 같다. 도착 플랫폼 쪽의 화장실은 대체로 낡고 퀴퀴한 편이라 잘 이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다른 데를 찾아다닐 계제가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칸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시원하게 일을 보고 있자니 옆칸에서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는 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때 자기가 생강 준 거 있잖아, 재탕삼탕 끓여서 너무 잘 먹고 있어. 고마워. 고맙긴. 호호. 나는 바지를 주섬주섬 챙겨입고 물을 내린다. 물 내려가는 소리 사이로 물 마시는 소리. 떡이나 김밥 같은 음식을 씹는 소리. 부스럭 부스럭 비닐봉지를 챙기는 소리. 그리고 반대편 옆칸에서는 다른 종류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화장실이라면 응당 들려오는 그런 소리들.
아마 미화원 아주머니들의 점심시간일 터이다. 장소는 화장실 내 청소도구 보관함. 누군가가 오줌을 누고 똥을 싸고 방귀를 뀌고 식도에 끓는 가래를 뱉는 곳에서 누군가는 식사를 하며 조용조용 담소를 나눈다. 먹는 사람에게나 싸는 사람에게나 이게 보통 민망한 일이 아니라는 거, 먹을 때는 맘 편히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 위에 계신 분들, 버스터미널 공중화장실에 들르실 일이 없더라도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문을 빼꼼이 열어 바깥을 살피고 후닥닥 화장실을 나왔다. 바로 옆에서 식사를 하던 분들과 얼굴을 마주치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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