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행복이 가득한 학교 꿈꿔요."
7일 오전 대관령 자락에 위치한 강원 강릉시 강동면 임곡초등학교. 이 학교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숲실 학교'라고도 불린다. 높은 산이 병풍처럼 학교를 감싼 모습이 전형적인 강원도 산촌 학교다. 이곳에는 '꿈동산'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60㎡(28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2층으로 개조한 이 공간은 '숲실 꿈 다락방'. 아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이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교사는 직접 책은 읽은 뒤 토론을 한다. 아이들은 첨삭지도를 받으며 자연스레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되고 논리적 사고 능력을 키운다. 그 흔한 PC방에 가지 못해도 즐겁기만 할 정도로 독서교육의 효과는 대도시 논술학원 못지 않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지난해 중학교에 진학한 조용수(14)군은 "큰 꿈을 꾸게 하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알찬 시간이었다"고 숲실 다락방의 기억을 떠올렸다.
임곡초교는 이처럼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도입해 폐교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났다. 이젠 전교생이 28명까지 늘었다. 그 때문인지 요즘 임곡리 마을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이를 놓고 교육계는 작은 기적을 이뤘다고 평가한다.
산골학교의 부활에는 2009년 3월 부임한 정금자(57) 교장이 도입한 인성 및 특기교육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 교장은 "자신이 기획한 '꿈 키움 프로젝트'를 완성해 아이들과 공유하는 것이 새해 소망"이라고 했다. "학생이 늘어 학교가 더 커지기를 기원한다"는 답을 예상했으나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정 교장은 이어 세부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High 5 STAR'라는 학교 인성교육 브랜드를 소개했다. 심신과 지식, 체력, 자기관리, 인간관계 등 5가지 능력을 극대화해 스스로 훈련하고 실천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꿈을 이루는 '실현자(Realizer)'를 기르는 커리큘럼이다.
두뇌만 뛰어난 천재도, 재능만 갖춘 영재도 아닌 올바른 가치를 지니고 상대를 배려하는 인재를 육성하려는 정 교장의 교육철학이 담겨 있다. 작은 학교를 살린 원동력이자 초등학교마저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현 시점에서 그가 교육계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정 교장은 "지식과 인성을 함께 배양하는 교육을 통해 학교 폭력과 따돌림이 없는 '클린 학교'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경력이 30년을 넘는 베테랑 교사에게도 산골학교 살리기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정 교장은 "처음 부임한 2009년 3월 임곡초교는 문을 닫는 것이 시간문제나 다름 없었다"고 털어놨다.
임곡리 석회석 광산이 문을 닫은 데 이어 인근에 강릉시 광역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서면서 학생수가 14명까지 줄었기 때문이다. 또한 수세식 화장실 등 시설이 열악해 어찌 보면 학생들이 줄어드는 것이 당연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분교는커녕 분교장으로 격하될 처지였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내학교로 올 수 있으니 조금만 참으라'는 말로 위로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태백, 영월 등지에서 근무해 시골아이들의 아픔을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정 교장은 교사들과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2010년부터 토론과 같은 특기 적성교육. 방과 후 독서와 음악, 무용, 어학 등 저마다 하나씩 특기를 계발하고, 여름이면 원어민 교사를 초청해 영어 캠프를 열고 해외연수를 보내는 학교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물론 예산확보를 위해 이곳 저곳에 발품을 파는 일은 정 교장과 교사들의 몫이었다.
어찌 보면 어느 학교에나 있는 '그저 그런'내용처럼 보이지만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이곳 학생들이 느끼는 체감효과는 컸다. 더구나 이런 교육을 공짜로 받는다니 타 지역 학부모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정 교장은 "임곡초교에 입학한 학생은 적어도 1가지 이상의 특기를 갖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입학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가운데 음악특기 교육을 통해 결성된 록 밴드인 '숲실 밴드'는 강릉지역에서는 유명인사가 됐다. 프로밴드 뺨치는 연주 실력으로 마을잔치 무대에 서는 것은 물론 단오제 등에 초청돼 실력을 뽐냈다. 이 학교의 특성화 교육이 만든 '히트상품'인 셈이다.
정 교장은 올해 또 하나의 히트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바로 골프 특성화 교육이다. 지난해 마을주민들과 동문회를 설득해 교정 뒤 야산에 연습장 부지를 마련했다. 졸업하면 해박한 지식과 적어도 하나 이상의 특기를 갖는 미국과 영국의 유명 사립학교의 교육과정을 벤치마킹 해 특기교육을 스포츠 분야까지 확대했다. 골프 연습장은 현재 환경영향평가가 진행 중으로 늦어도 올해 하반기에는 첫 삽을 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 교장은 예산지원을 받기 위해 문이 닿도록 교육청 문을 드나들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재능을 갈고 닦은 우리 '숲실둥이'들을 응원해주세요. 머지 않아 아이들 가운데 골프 유망주와 과학영재 등 대한민국을 빛낼 인물이 나올 날을 기대해 봅니다."
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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