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모르니 찾아줘.”
“타이어 펑크 났으니 자동차 바꿔줘.”
사소한 트집으로 물건을 교환하는 ‘꼴불견 손님’(블랙컨슈머)를 소재로 한 인기 코미디의 대사가 아니다. 실제 지난해 금융회사 전화상담실 직원들에게 걸려온 상담 내용이다. 콜센터 직원을 상대로 한 악성민원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사 콜센터에 걸려온 전화가 10억건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불황을 반영하듯 시중 은행과 카드사 콜센터에는 대출금리를 낮춰달라는 전화가 예년보다 20~30% 늘었고, 연체된 채무를 감면해달라는 요구도 많았다. 손해보험사에는 긴급 출동, 보상 접수ㆍ상담 문의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황당한 요구로 콜센터 직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사례는 더 많이 늘어났다. “차로 친 멧돼지를 먹어도 되느냐” “나 휴가 간다” 등 업무와 상관 없는 내용부터 “넌 누구냐, 목소리 맘에 든다” “나랑 사귀자” “남자도 콜센터에서 근무하냐” 등 조롱이나 성희롱 등도 서슴지 않았다. 콜센터 직원이 고객과의 관계를 의식해 고소ㆍ고발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점을 노린 것이다.
현대해상 콜센터에는 남편이 밤새 안 들어왔는데 위치 추적을 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보험사가 심부름센터가 아니기에 고객에게는 이런 전화는 경찰서로 해달라고 안내했다”며 “욕설 등 모욕뿐만 아니라 상담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말로 장시간 업무를 방해하는 사례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에선 이 같은 콜센터 직원을 상대로 한 악성민원이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고 판단, 고발 등의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금융회사에 주문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콜센터 직원이 외주용역회사 소속이 대부분이라 악성민원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콜센터 직원의 인권침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상습적으로 언어폭력을 일삼는 고객은 적극적으로 고발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콜센터 직원에 대한 ‘고충처리반’을 신설하는 등 보호ㆍ감시체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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