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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1년 만에 온 익일 특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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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1년 만에 온 익일 특급

입력
2013.01.07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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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1년 11월에 ‘새 돌잔치’를 마친 사람이다. 어험! ‘새 돌잔치’는 우리 고등학교 동기들이 한바탕 퍼 마시며 벌인 환갑잔치다. 환갑이라는 게 원래 육십갑자 중에서 자기가 태어난 해가 돌아오는 것이니 새 돌을 맞은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지어진 이름이 ‘새 돌잔치’다. 우리는 철든 돌잡이들이다.

그날 2011년이 환갑인 녀석, 이미 환갑을 지낸 녀석, 앞으로 환갑을 맞는 녀석 등 세 부류가 한데 얼려 하루 종일 재미있게 놀았다. 우리는 사모관대를 갖춰 입고 공동 회갑상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참석자 전원이 단체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난 지 한 달이 넘도록 집으로 부쳐주겠다던 사진이 오지 않았다. 동기회 홈페이지에 사진이 떴기에 왜 나한텐 안 보내느냐고 물어보니 사무총장은 버얼써 보냈다고 했다. 조금 더 기다려보다가 아무래도 오지 않기에 해를 넘기기 전에 받고 싶어서 채근하자 “거 참 이상하다. 다른 애들은 다 받았던데.” 그러면서 나를 만났을 때 사진을 주었다.

그가 우체국에 알아보니 분명 본인의 서명을 받고 사진을 배달했다고 대답하더란다. 아아니, 매일 출근하는 사람이 아침 10시에 집에 있었다구? 내 생활을 잘 아는 사무총장은 대답이 하도 말 같지 않아서 웃어넘겼다고 한다.

그 뒤 환갑사진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2012년 12월 20일 갑자기 사진이 집으로 배달돼왔다. ‘절대 접지 마세요!’라고 내 친구가 붉은 글씨로 쓴 서류봉투에 사진 2장이 담겨 있었다.

이 사실을 알려주자 친구는 우편 접수일을 먼저 살펴보라고 했다. 과연! 그 등기우편물에는 2011년 12월 21일로 접수일이 찍혀 있었다. 웃기는 것은 이게 ‘익일특급’이라는 것이다. 익일특급이라면 다음날 배달돼야 하는데 인천 부평구 부평1동에서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우리 집까지 오는 데 하루가 아니라 1년이 걸렸으니 어이가 없었다.

강동우체국에 전화로 문의했으나 민원센터의 여직원은 이 배달 지연에 대해 설명을 하지 못했다. 며칠 후 찾아갔다. 책임을 추궁한다기보다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해서였다. 봉투를 살펴본 그 여직원은 1년이 지나면 우편물에 찍힌 바코드에 관한 기록이 다 삭제되기 때문에 어찌 된 건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사흘 뒤에 온 우편물에 대해서는 배달한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아무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의 사진봉투를 누가 배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여직원과 내가 내린 결론은 어떤 집배원이 이걸 가지고 있다가 바코드가 삭제되는 1년을 기다려 우리 집에 주고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 다행스럽게도 그 사람은 사진을 접지도 않고 봉투에 먼지나 얼룩 하나 묻힌 바 없이 고이 보관하고 있다가 주고 간 것이다.

우체국 여직원은 미안하다면서 커피를 빼 주더니 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포장된 사은품 샴푸 한 개를 가져다 주었다. 그 놈의 사진 때문에 내 친구가 한동안 곤혹스러웠고, 사진을 새로 뽑느라 비용이 더 들었지만 이 사건은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 나는 사진이 두 벌씩 생겼고, 샴푸를 얻게 됐고, 양심을 끝내 저버리지 않은 집배원이 어디엔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강동우체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게 됐다.

지하철 5호선 길동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던 강동우체국은 저 주택가 안쪽에 깊이 자리잡고 있어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눈길이 미끄럽고 날씨가 추웠지만 이런 일들과 풍경이 곧 즐거운 세상의 모습 아니겠는가?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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