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세상의 종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세상의 종말

입력
2013.01.06 12:02
0 0

지난해 12월 22일에 공개된 미국 항공 우주국 나사(NASA)의 비디오, '세상이 어제 끝나지 않은 이유'에서 천문고고학 센터 소장 존 칼슨 박사는 "마야 달력은 2012년 12월 21일에 끝나지 않으며, 마야인들이 그 날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예언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나사에서 한마디 할 만큼, 종말론이 유행하긴 하는 모양이다. 특별히 예언 능력이 알려진 것도 아닌 마야 문명의, 해석의 근거도 확실치 않은 텍스트를 가지고도 세상의 종말을 운운하는 걸 보면 사람들은 종말론에 정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아무리 종말론이 그저 돈벌이 수단이라 해도, 장사가 되지 않는다면 애초에 자본이 그렇게 달려들 리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에 어떤 선교회의 목사가 1992년에 세상의 종말이 오고, 이름도 낯선 휴거라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종말론을 주장하는 교회에 1,000만 원 이상의 거액을 헌납한 신도가 수십 명이었고, 피해를 입은 사람은 수백 명에 달했다고 한다. 휴거 소동을 보더라도, 세상의 종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비록 자기가 주장한 종말의 날 뒤에 만기가 되는 환매채를 사들이기도 했다는 그 목사는 결국 사기죄로 처벌을 받았지만 말이다.

종말론이 횡행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세상의 종말을 생각한다는 것은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이, 현실의 고통을 피하려고 기댈 데를 찾다 못해 절망의 끝에 기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세상의 종말은 두려운 일이긴 하지만, 현실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적어도 이 비극적인 세상에 대한 한 가지의 설명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의 종말은 확실히 온다. 우리 태양은 중심의 핵에서 수소를 태워 헬륨을 만드는 핵융합 과정을 하고 있는데, 수소가 타서 줄어듦에 따라 핵은 더 작아지고, 그러면 온도와 압력이 올라가서 핵융합 반응은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태양은 점점 더 밝아지고, 점점 더 부풀어 오른다. 핵이 수소를 모두 태우면 핵에는 헬륨의 재만 남고, 태양은 외피의 수소에서만 핵융합이 일어나는 적색 거성이 된다. 이때 태양의 크기는 거의 지구 궤도 근처까지 부풀어 오르게 되면서 수성과 금성을 집어 삼킬 것이다. 그런데 태양이 적색 거성이 되면 바깥쪽 물질들이 상당 부분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려 질량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중력이 약해져서 행성들의 궤도가 지금보다 커질 것이기 때문에, 지구까지 태양에 삼켜질지는 확실하지 않다.

적색 거성이 되면 거대한 크기의 별 내부 온도가 불안정해서 태양은 끊임없이 맥동하면서 외부로 물질들을 배출할 것이다. 날아갈 물질이 다 날아가고 중심핵만 남으면, 핵은 서서히 식게 된다. 이후 수십억 년에 걸쳐, 핵만 남은 태양이 식어서 어두워지고 남은 조그만 덩어리를 백색 왜성이라고 한다. 태양 정도 크기의 별은 모두 이런 일생을 겪는다.

태양이 적색 거성이 되는 데는 앞으로 약 50억년, 이후 백색 왜성이 되는 데는 다시 몇 십억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인간이 이런 모습을 볼 가능성은 없다. 지구 생명체의 운명은 그보다 훨씬 일찍 종말을 맞을 것이다. 태양이 더 밝아지고 뜨거워짐에 따라 지구 표면의 온도도 올라간다. 지금보다 지구 표면 온도가 몇 십도만 올라가도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인간과 같은 동물은 체온 유지가 어려워진다. 온도가 더욱 올라가서 섭씨 100도를 넘어서면 바닷물이 끓어오르고, 엄청나게 증가한 수증기가 지구를 둘러싸며, 반면 물을 잃어버린 지표는 일종의 사막이 된다. 식물은 말라 죽고, 식물이 없어짐에 따라 대기의 산소 농도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 정도가 되면,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더 이상 인류가 생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무서운 이 스토리는 사실 몇 억 년 후의 일이다. 몇 억 년이라는 시간은 태양의 일생보다는 짧지만, 기껏해야 수십만 년 전에 탄생해서, 문명을 건설한 지 채 1만년도 되지 않은 인간이라는 종이 실감하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다. 그러나 고작, 세상의 종말이 아직 멀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한다는, 그래서 연초부터 세상의 종말이나 이야기하고 있다는 현실은 역시 우울하다.

이강영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