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류현진이 있다면 테니스에 정현이 있다. 류현진이 고교를 졸업한 뒤 곧 바로 프로무대에 뛰어들어 마운드를 지배한 것처럼 고교생 정현도 이미 주니어를 뛰어넘어 프로의 기량을 갖추고 있다."
윤용일(40) 남자 테니스 국가대표 감독이 정현(수원 삼일공고)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윤감독은 이어 "지난 수개월 동안 지켜본 결과 정현은 멘탈은 물론이고 상대를 읽는 눈과 위기관리능력 등등 어디 한 군데 간섭할 곳이 없을 정도로 초고교급 실력을 갖췄다. 굳이 흠을 찾는다면 서브의 스피드가 떨어지고 정확성이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체력과 경험부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라며 "한마디로 정현은 무결점 플레이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정현이 사용하는 라켓의 무게가 로저 페더러(윌슨 355g)의 것과 비견될만한 340g(던롭)으로 310g을 즐겨 쓰는 또래들보다 공이 묵직한 편이다"고 덧붙였다.
한국테니스의 새로운 희망봉 정현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1996년생 올해로 17세다. 그는 지난 2일 기자와 만나 "올 시즌 목표는 퓨처스대회 우승과 남자프로테니스(ATP)랭킹 500위권 진입"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괜한 욕심에서 나온 빈말이 아니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정현은 한국테니스의 미래를 바꿀 DNA를 품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11년 연말 키 175cmㆍ 몸무게 65kg였던 정현은 1년 만에 180cm에 74kg을 웃돌 정도로 한 층 강화된 하드웨어를 장착했다. 육체적 성장을 훨씬 능가하는 랭킹 업그레이드도 눈부셨다. 전영대(53) 테니스협회 부회장겸 건국대 감독은 "새해 들어 정현은 아시아 선수론 유일하게 주니어 톱10 반열에 올랐다"며 "이번 호주오픈테니스 주니어 부문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도 남을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현은 지난해 1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국제테니스연맹(ITF) 주니어 2차 대회(G2) 단복식을 석권한 것을 시작으로 3차례 정상에 올랐다. 6월에는 G2대회보다 한 등급 높은 독일 오펜바흐 주니어대회(G1) 단식 우승컵을 손에 넣었고, 10월 이덕희배(G2)에서도 역시 단식 시상대 맨 위에 섰다. 또 프로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삼성증권배 챌린지 대회에서도 국내 최연소로 8강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상대는 ATP 랭킹 212위 첸티(30ㆍ대만)였다. 정현은 이어 지난달 20일 홍콩 3차 퓨처스 대회에서도 국내 최연소로 4강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가 도전장을 내미는 곳마다 한국 주니어 테니스의 새로운 역사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정현은 이로써 지난 1일 발표된 주니어랭킹 9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불과 1년 전 400위권에서 톱10으로 진입한 현기증 나는 수직상승이다. 아시아 선수론 정현에 이어 일본의 니시오카 요시히토(18)와 홍성찬(16)이 각각 17위와 18위로 뒤를 이었다. 정현의 ATP 랭킹은 현재 770위다. 지난해 연말 853위에서 무려 83계단을 뛰어 넘었다.
정현의 이 같은 광폭성장은 놀랄 일도 아니다. 2011년 연말부터 낭중지추(囊中之錐ㆍ주머니속의 송곳)의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수원북중 3학년 정현은 한국선수론 처음으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오렌지보울 테니스 국제주니어대회 16세부 단식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프로데뷔를 앞둔 각국 유망주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진 16세부에서 한국인이 챔피언 트로피를 안은 것은 정현이 처음이다.
사실 이 같은 끼는 집안내력이기도 하다. 아버지 정석진(48ㆍ삼일공고 감독)씨가 실업테니스 선수 출신이고 최근 테니스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린 정홍(20ㆍ건국대)과는 형제간이다. 한글을 익히고 난 뒤 가장 먼저 배운 것이 테니스 일 정도로 정현은 라켓과 친숙했다. 이런 까닭에 죽산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8년 오렌지보울 12세부 챔피언에 올랐다. 이듬해 굴지의 스포츠매니지먼트사인 미국 IMG에 전격 발탁돼 방학때 마다 형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닉볼리티에리 아카데미의 특별관리를 받았다.
지난해 중반부터 삼성증권의 후원을 받기 시작한 정현은 한 층 안정된 상황에서 테니스에 몰두하게 됐다. 그는 "윤용일 감독의 지도를 받으면서 서브 스피드가 빨라졌고 또 발리 공격에서도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프랑스 오픈과 US오픈에서 각각 2,3회전에 그친 것이 못내 아쉽다"라며 "올해는 퓨처스대회 우승컵에 내 이름을 새겨 넣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현의 새해 첫 도전은 19일 막을 올리는 호주 오픈이다. 최근 오른쪽 팔꿈치에 통증을 느껴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지만 정밀 검사결과 단순 통증으로 밝혀져 15일 호주행 비행기에 오를 것이다. 그는 "지난해 해외투어를 10여개 소화하다 보니 외국선수들에 대한 적응력을 완전히 키웠다. 이번 대회에서는 4강권이 목표다. 노박 조코비치(26ㆍ세르비아)처럼 파이팅과 카리스마 넘치는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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