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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빅 3 → 국가대표→ 日 요미우리 '승승장구' 팔꿈치 부상 후 내리막길… 2007년 마운드 떠나

입력
2013.01.0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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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성민(40)씨는 고(故) 최진실의 전 남편으로 유명세를 타기 이전에 한국 야구가 배출한 최고의 투수였다.

조씨는 신일고 시절 임선동(휘문고), 손경수(경기고)와 함께 고교야구 '빅3'로 꼽혔다. 1991년 봉황대기에서 우수투수상과 최다홈런상을 받았고, 황금사자기에서도 우수투수상을 거머쥐었다. 그 해 한미일 국제 청소년야구대회와 고려대 2학년이던 1993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국가대표로 뽑히는 등 아마추어 최강자로 군림하던 그는 국내 프로야구 드래프트를 포기하고 1995년 말 일본프로야구의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금 1억5,000만엔(약 18억원), 연봉 1,200만엔에 입단 계약을 했다. 데뷔 2년차이던 1997년 마무리투수로 1승2패11세이브를 올려 기대를 모았고, 1998년에는 전반기에만 7승을 거둬 올스타에 선발되기도 했다. 2000년에는 당대 톱스타 연예인 최진실과 결혼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영광은 여기까지였다. 올스타전에서 팔꿈치 부상을 당한 후 내리막길을 걸은 끝에 일본 무대에서 4시즌 동안 11승10패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4의 성적을 남기고 2002년 퇴단했다. 가정사도 순탄치 못해 2004년 9월 협의 이혼했다.

국내로 돌아와 당시 김인식 한화 감독의 부름을 받고 재기를 모색했지만 2005년부터 3년간 3승4패4홀드에 평균자책점 5.09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유니폼을 벗었다. 이후 야구 해설가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두산 베어스의 재활 코치로 새 인생을 시작했지만 두산은 지난 12월 재계약을 포기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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