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5도의 추위에 동상에 걸려 세 차례나 병원에 찾아갔지만 단순 치료만 받고 나와 거리를 전전하다 결국 발가락 절단 위기에 놓인 노숙인 김모(55)씨의 사연(본보 5일자 8면 보도)이 알려지면서 노숙인에 대한 의료안전망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응급상황의 노숙인 환자에 대한 구급조치 및 관리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병원과 노숙인 지원시설 간 협력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씨를 처음 진료한 국립의료원의 응급실 당직의사는 당장 수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다음날 외래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문제는 연고자도 없는 김씨가 꼬박꼬박 외래진료를 받으러 다닐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김씨가 병원을 오가는 사이 두 차례 거쳐간 구세군브릿지종합지원센터(구세군센터) 관계자는 "노숙인 환자 중에는 센터에 머무르면서 병원을 오가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거동이 불편하거나 장애가 있어 혼자 움직이기 어려운 환자의 경우 외래진료를 받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국립의료원의 노숙인 구호체계는 진료 후 노숙인이 구호시설에 갈 의향이 있으면 관할 경찰의 도움을 받아 24시간 운영되는 서울시 다시서기센터로 인계하도록 하고 있다. 센터는 이후 요양병원으로 환자를 넘기도록 돼 있다. 하지만 김씨의 경우 시설로 인계하는 절차를 밟지 않았고, 자연히 진료가 이어지지 않아 발가락 절단 위기로 악화했다. 국립의료원 응급실 관계자는 "노숙인 환자에 대한 처리 매뉴얼을 알고 있는 의료진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 같은 매뉴얼이 갖춰진 곳은 국립의료원 정도다.
매뉴얼이 있다 해도 현실적으로 노숙인 보호 시설에 노숙자들을 병원에 데리고 다닐만한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구세군센터의 경우 기관장 포함 15명이 하루 550명을 상대하고 있어 치료가 필요한 노숙자를 119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보내주는 정도에 그친다. 구세군센터 관계자는 "당장 노숙인의 잠자리와 식사를 챙기는 데 급급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의료기관은 노숙인 환자가 일반 환자와 다르다는 인식이 부족하고, 노숙인 보호시설은 일손이 없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치료 의지가 없는 노숙인 환자는 비극적인 말로를 맞기 십상이다. 서울역에서 노숙인 센터를 운영하는 우연식 목사는 "단순 치료만 받고 다시 거리로 나와 병을 키우거나 혹한의 날씨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서울시에서 노숙인 위기 대응센터를 24시간 운영하고 있지만 치료 의지가 부족한 노숙인 환자의 특성상 이들이 자발적으로 찾아가길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우 목사는 "노숙인 환자를 각각 관리하는 보호소와 센터, 국공립 병원과 무료 진료소 시설과 인력을 확충해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환자가 없도록 관리하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일단 현재 있는 병원과 보호소 간의 연계시스템만이라도 마련해 노숙인 환자 의료 지원체계의 공백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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