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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의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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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의 사탕

입력
2013.01.0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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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 사랑, 가난, 기침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다. 이 세 가지는 아무리 숨길래야 숨길 수도 없지만 숨길수록 더 드러난다. 사랑과 가난은 드러난다고 남에게 특별한 피해를 주지 않지만 기침은 다르다.

특히 클래식 공연장에서 기침은 고질병이다. 그게 뭐 그렇게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숨을 가다듬거나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연주자는 물론, 음악에 빠져들려는 관객들에게는 분명 훼방꾼이다. 객석에서 나는 소음으로 연주자들이 음표를 까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공연 중에도 그렇지만 악장 사이에 따발총처럼 쏟아지는 기침도 거슬린다. 저렇게 하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주와 감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고통과 괴로움을 견뎠다는 호소로도 들린다. 음악을 즐기기보다 대체 연주가 언제나 끝나서 기침을 할 수 있을까 하면서 기다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강의실이나 공연장 등에 사람이 100명 정도 모이면 1분당 2, 3회의 기침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가들의 공연 실황 앨범에서는 청중의 기침소리가 빠지지 않는다. 간간이 들리는 기침 정도는 실황녹음을 알려주는 애교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신경이 예민한 연주자나 지휘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1999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뉴욕필하모닉 공연 도중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3악장 지휘 도중 지휘석에서 내려와 무대 뒤로 나가버렸다. 객석 앞자리 한 귀퉁이에서 기침소리가 심했기 때문이다. 그가 퇴장하는 순간 청중도 박수를 보냈다. 마주어는 2분 뒤 관중의 박수 갈채 속에 등장해 나머지 연주를 마쳤다. 그는 나중에 "인간의 고뇌하는 모습을 아주 느린 템포로 아름답게 묘사해야 하는 대목에서 빠른 기침소리가 들려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이장직의 ) 또 까다로운 결벽주의자로 이름난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1920~1995)는 청중이 기침을 세 번 했다고 해서 앙코르를 거부한 일도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1960년 바티칸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황제'연주 도중 엄청난 천둥이 쳤음에도 오히려 잔뜩 고무돼서 공연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공연장에서 기침은 전염성이 강하다. 한 사람이 시작하면 멀쩡한 사람도 갑자기 목이 간질간질한 것 같다. 옆 사람이 하면 심리적으로 자신도 한 번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불가항력적인 기침도 있지만 목을 깨끗하게 하려는 헛기침도 심각하다.

이 때문에 해외 일부 공연장에는 목캔디를 비치해두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조사에 따르면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홀, 미국 카네기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오래 전부터 관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그 결과 기침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예술의전당도 이르면 이번 주부터 콘서트홀 로비에 사탕을 두기로 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적지 않은 고민을 해온 듯싶다.

의사들은 사탕이 기침을 멈추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한다. 레몬이나 귤로 만든 사탕을 빨면 기침이 멎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는 한방이나 민간요법 등에서 일부 나오지만,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목이 말라서 기침이 나올 때 물을 마시거나 침을 입 안에 고이게 해 삼키거나 하면 일시적인 진정 효과는 있다고 한다. 어쨌든 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것 자체로 기침을 자제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 효과는 클 것 같다.

최근 감기에 걸린 상태에서 공연장을 찾았다가 기침을 참느라 공연 내내 괴로운 적이 있었다. 얼굴이 발갛게 되다가 나중엔 눈물이 나왔다. 앞으로 사탕까지 입에 물고 있으면 꼭 재갈처럼 느껴질 것 같다. 혹 어쩌다가 기침이 터지게 되면 주변에서 쏘아대는 눈총으로 뒷꼭지가 뜨거워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클래식 공연장에는 사탕 말고도 생수와 손수건은 꼭 챙겨가야겠다.

최진환 문화부장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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