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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상대 이름찾기 소송

입력
2013.01.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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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에 사는 15세 소녀 블라어 브야르카르도티르의 이름 '블라어'는 '남실바람'이라는 예쁜 뜻을 갖고 있지만 아이슬란드 내에서는 불법이다. 정부가 인가한 여성 이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학교와 은행, 관공서에서는 블라어 대신 '소녀'라는 뜻의 '스툴카'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 하지만 블라어는 엄마가 지어준 자신의 이름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녀는 현재 이름을 쓸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 중이라고 AP통신이 3일 전했다.

아이슬란드에는 국민 이름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있다. 정부는 아이슬란드 문법에 맞고 사회 통념에 어긋나지 않는 남성 이름 1,712개와 여성 이름 1,853개를 정해 놨다. 부모는 아이 출생 후 6개월 안에 명단 내에서 이름을 골라 등록해야 하고 명단 이외 이름을 짓고 싶으면 따로 특별위원회에 인가 신청을 해야 한다. 특별위원회는 정부가 지명한 3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신청된 이름을 검토해 인가 여부를 결정한다. 위원회 결정은 다른 정부 기관에서 뒤집을 수 없다. 성인이 개명을 원할 때도 위원회 검토를 거쳐야 한다.

블라어의 엄마 비요크 아이드도티르는 "딸의 이름이 인가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항변한다. 가톨릭 신부에게 이 이름으로 세례까지 받은 터라 돌이킬 수 없었다는 것이다. 비요크는 "이 이름이 인가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블라어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할도르 락스네스의 소설 속 인물의 이름으로도 등장한 적이 있다. 하지만 위원회는 이 이름이 외설물에 자주 쓰인다는 이유로 1973년 인가를 거부했다. 비요크는 "블라어보다 더 이상한 이름들도 인가된 사례가 있다"며 "부모가 자녀에게 원하는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기본적 인권 아니냐"고 되물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이름 규정이 엄격한 것은 "인구가 적어서 다른 국가보다 이름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이름만으로도 전화번호부에서 사람을 찾을 수 있으며 올라푸르 라그나르 그림손 대통령조차 올라푸르로 기재돼있다. 따라서 정부는 "사적 취향만으로 이름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별위원회의 아구스타 쏘르베르그도티르 위원장은 "'사탄'과 비슷한 '사타니아' 같은 이름을 인가할 수는 없다"며 "아이들이 이름 때문에 곤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름의 인가 여부를 판가름하는 정부 기준이 주관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30세였던 7년 전 자신의 이름을 '쿠르베르'로 바꾸려다 위원회로부터 거부 당한 예술가 비르기르 쏘로드센은 "정부가 아이 이름을 '개똥이'로 짓는 부모를 막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성인이 자신의 이름을 원하는 대로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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