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립의료원과 환자 김모(55)씨에 따르면 서울 성동구 뚝섬역 인근 공원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김씨는 지난달 중순부터 신발에서 뺄 수 없을 정도로 양 발이 퉁퉁 붓고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동상에 걸렸다. 발가락의 감각이 없어져 버릴 만큼 상태가 심해진 김씨는 공원에 순찰 나온 성동구청 사회복지사에게 부탁해 지난달 27일 저녁 119구급차로 중구 을지로 국립의료원 응급실에 갔다. 국립의료원은 민간병원이 기피하는 분야를 포함해 국민 모두에게 차별 없는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의료기관이다.
김씨는 국립의료원에서 상처소독, 항생제 투여, 엑스선 촬영 등의 처치 후 3일치 약을 받고 귀가 조치됐다. 정형외과 레지던트인 당직의사가 수술이 당장 필요한 건 아니니 외래진료를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당시 걷기 힘든 상태여서 입원 치료를 원했지만, 의사가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휠체어에 태워 김씨를 병원 건물 바깥으로 옮긴 병원 보안요원은 한 걸음을 뗀 김씨를 보고 보행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는지, "(병원) 들어오고 싶으면 112에 신고하든지 하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제대로 걸을 수 없었던 김씨는 30분 동안 바깥에서 덜덜 떨며 앉아있다 기어서 10여m 떨어진 병원 인근 을지회관 경비실로 가 경비원을 통해 112 신고를 했다. 출동한 경찰은 노숙인 보호소인 서대문구 구세군브릿지종합지원센터(구세군센터)로 김씨를 옮겨줬다.
김씨는 이곳에서 약을 복용하며 머물렀지만 상태는 악화되기만 했다. 구세군센터 측은 붕대로 묶은 김씨의 양 발에서 피가 나고 걷지 못하자 같은 달 30일 아침 119구급차를 불러 국립의료원에 보냈다. 하지만 당직의사는 붕대를 갈고 소독하는 등 단순치료만 한 뒤 다시 김씨를 돌려보냈다. 김씨는 "두 번째 진료 때도 입원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했지만 의사는 외래진료를 권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는 112를 통해 경찰 순찰차로 노숙인 자활기관인 서울역다시서기센터에 잠시 있다가 다시 구세군센터로 갔다. 이 곳에서 다시 3일을 묵은 김씨의 상태가 심상치 않자 구세군센터 측은 지난 2일 119 구급차를 불러 김씨를 국립의료원 응급실로 보냈다. 구세군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김씨 발에 감아 놨던 붕대가 벌겋게 물들 정도로 출혈이 심했다"고 말했다.
3번째 진료를 받게 됐지만 김씨의 양 발은 회복이 쉽지 않은 상태다. 김씨를 진료한 다른 의사는 "왼발은 엄지부터 3개 발가락이 꺼멓게 괴사해 절단해야 하고, 오른쪽 엄지 발가락도 절단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김씨는 "치료도 못 받고 병원과 노숙인쉼터를 전전해야 했던 처지가 원망스럽다"며 울먹였다.
이에 대해 앞서 두 차례 김씨를 치료했던 의사는 "항생제 등으로 김씨의 양 발에 생긴 급성염증을 먼저 치료한 뒤 수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외래진료를 오라고 당부했는데 김씨가 오지 않아 증상이 악화했다"며 "당시 김씨의 생명이 위험한 상태도 아닌데다 병원 입원실도 부족해 갈 곳이 없다는 김씨를 무조건 입원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서울에서만 지난해 12월9일 서초구 고속터미널 호남선에서 폐렴질환을 앓는 노숙자가 사망한 데 이어 2일 오전 마포구 노고산공원 공중화장실에서 또 다른 노숙자가 숨지는 등 동사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부터 겨울철 노숙자 특별 보호를 위해 '노숙인 위기 대응 콜센터'를 24시간 운영하고 있지만 노숙자들의 속성상 활용이 높지 않다. 더욱이 노숙자 질환자가 발생했을 때 노숙자보호시설과 상담센터에서 병원에 진료 의뢰를 하는 것 외에는 명확한 처리 매뉴얼이 없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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