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전한 차를 탔던 학생이 장관도 되고, 교수도 될 때 뿌듯했어요. 한평생 이곳에서 일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34년간 서울대 캠퍼스에서 운전장으로 일하다 지난달 정년퇴직한 이영기(60)씨는 자신의 지난 삶이 행복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78년 서울대 관리과 차량계에 입사한 뒤 셔틀버스와 단과대 학장 등의 차량을 몰았다.
“ 를 쓴 김난도 교수도 학생일 때부터 봤고, 오연천 총장도 서울대 교수로 처음 왔을 때부터 봤어요. 대학원생이나 신출내기 교수로 얼굴을 익혔던 이들이 어느새 유명인이 된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자랑스럽기도 했는데, 시간이 참 빠르네요.”
서울대 관악캠퍼스는 전체 면적이 63만㎡로 축구장 95개를 합쳐 놓은 만큼 넓은데다가 건물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 인근 지역과 학교를 연결하거나 교내를 순환하는 셔틀버스가 26대나 있다. 이씨는 오전 7시부터 12시간 동안, 때로는 자정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버스를 몰았다. 이 때문에 학생과 교수들의 일상을 매일같이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자식 같기만 한 학생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 일찍 버스에 오르던 모습, 자정이 넘어서야 도서관을 나와 무거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오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마을버스도 끊긴 시간에 심야 셔틀버스를 타고 기숙사를 향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공부에 열정을 쏟아붓는 서울대생들이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가 30여년간 캠퍼스 구석구석을 돌며 쌓아온 추억과 일화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은 따로 있다. “1980년대 최루탄 가스가 자욱한 거리에서 서울대생들이 시위하는 모습, 신군부 계엄령으로 학교 정문이 봉쇄되고 군인들이 단과대 학장의 차량까지 막무가내로 막아 세운 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이씨는 버스를 타는 학생들에게 늘 웃으면서 인사를 먼저 건넸다. 자식 같아서, 또 이웃을 위해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학생들이 자신보다 먼저 인사해줄 때는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예전 서울대생들은 말 그대로 ‘공부벌레’처럼 수수하고 소탈하기만 했는데, 요즘 학생들은 많이 세련돼졌어요.”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