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하고 일 년여 쯤이던 2009년 처음 만난 박준(30)씨는 대개 시인들이 그렇듯 시보다 잡문이나 남의 글(대필)을 더 많이 쓴다고 했다. 그 고료로 생활비와 대학원 등록금을 충당했던 그는 얼마 후 한 출판사에 취직해 100여만 원을 받는 월급쟁이 편집자가 됐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는 그 출판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최근 첫 시집을 냈다. 선물할 시집 살 돈이 없다는 소식을 들은 한 선배가 부쳐온 돈으로 시인은 제 시집을 사 그 선배와 선배의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요즘 시단(詩壇)에는 어려운 이론과 기법을 앞세우지 못하면 행세하지 못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박씨의 시는 참으로 오랜만에 '아, 여전히 삶을 노래하는 젊은 시인이 있구나'란 생각이 들게 한다. 자신의 경험을 밑천으로 삶을 노래하는 그의 시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아, 아직도 이렇게 사는 시인이 있구나'란 생각을 한다.
시인은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고백하며 읽는 이를 애잔하게 만들고, 그 애잔함으로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섬세한 감성과 곡진한 시어는, 그가 불편하지 않다면 '리틀 문태준'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부분)
가난한 유년시절과 불편한 이 시대, 자신의 아픈 몸과 그런 자신의 이마를 짚어주던 죽은 누이를 기리는 노래 62편이 4부로 나뉘어 실려 있다.
시집 곳곳에 나오는 '미인(죽은 누이)'은 나와 세상을, 삶과 죽음을 연결한다. '(…)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부분) '나는 오늘 너를/ 화구에 밀어넣고// 벽제의 긴/ 언덕을 내려와//(…)// 사람의 울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통곡이 아니라// 곡과 곡 사이/ 급하게 들이마시며 내는/ 숨의 소리였다' ('오늘의 식단-영(䁐)에게' 부분)
여기, 삶을 노래하는 시인이 있다. 슬픔을 고백하는 시인이 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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