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한창인 3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다문화자료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9개 외국어 도서 4,000여권이 빽빽이 꽂혀 있는 이곳에는 영어 동화책을 읽고 있는 어린이 몇 명과 학부모들만이 눈에 띄었다. 도서관 관계자는 "이름만 다문화자료실이지 다문화인 이용자는 거의 없고 대부분 영어책을 보기 위한 내국인들 뿐"이라고 말했다.
다문화가족지원대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해마다 6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부어 4년째 진행되고 있는 공공도서관 다문화자료실 설립사업이 정작 다문화인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다문화자료실은 국내에 이주한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이민자 등 다문화인들이 서로의 문화적 차이와 가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된 서적을 모아 놓은 문화교류와 소통의 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09년부터 전국 783개 공공도서관 가운데 적합한 곳을 선정, 지방자치단체와 예산을 분담해 다문화자료실 설치를 지원해 왔다. 2009년 충남 천안과 경남 김해를 시작으로 2010년 6곳, 2011년 10곳, 2012년 10곳 등 현재까지 전국 각지에 총 29개의 다문화자료실이 들어 섰다.
하지만 정작 이들 자료실의 다문화인들의 이용 실적은 형편 없이 낮다. 지난해 11~12월 정독도서관 다문화자료실 도서 대출자 225명 중 다문화인은 16명뿐이었다. 전남 광양시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등록된 다문화인 100여 명 중 지난 1년 동안 한 번이라도 자료실을 찾은 사람은 20명도 안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낮은 이용률 때문에 서울 은평구립도서관은 지난해 11월부터 별도 다문화자료실을 없애고 어린이자료실과 통합해 운영하고 있는 상태다.
이같이 다문화자료실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접근성 문제이다. 현재 약 40만 명의 외국인이 거주하는 서울시내 다문화도서관은 종로구, 은평구, 관악구 3곳뿐이다. 관악구 조원도서관에서 만난 베트남인 이주노동자 A씨(32)는 "도서관에 오려면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갈아 타야 한다"며 "매번 책 대출과 반납만을 위해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점은 다문화인들이 이 같은 자료실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 이미 4년이 지났지만 그만큼 홍보와 정보교류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문광부가 각 도서관 자료실에 제공하는 지원금 5,000만원은 모두 도서 구입 및 자료실 구축에 쓰일 뿐 홍보비용은 전무하다. 다문화센터와 구청 등에 안내 책자를 비치해놓은 게 고작이다. 실제로 필리핀인 이주노동자 바토(34)씨는"3년 전부터 서울에 살고 있지만 다문화자료실이 있다는 건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에선 더러 성공 사례도 있다. 주말마다 100명 가까운 다문화인들이 찾는 김해다문화도서관은 외국인주민센터에 자리잡고있다. 이 도서관 관계자는 "국내 다문화인 가정은 맞벌이가 많고 도서관을 직접 찾아갈 시간 여유가 없어 도서관이 찾아가기 쉬운 곳에 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도서관은 또 독서 전문가들이 직접 다문화 가정을 방문해 독서 교육법을 교육하는 등 프로그램을 운영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광부 측은 뚜렷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문광부 관계자는 "도서관의 재정 여건, 운영 관리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료실을 만들었는데 이용률이 너무 낮다"며 "올해부터 현장 실사 및 담당자 교육을 실시하고 우수한 다문화프로그램 지원에 집중해 실질적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서희기자 sherlo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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