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기름값 걱정은 하지 마시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4일 오전 광주 남구의 한 장례식장. 전날 새벽 보일러도 켜지 않은 채 집에서 잠을 자다 숨진 A(79) 할머니의 빈소를 지키던 유족들은 어머니를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슬픔에 젖어 있었다. "며칠 전 보일러에 기름을 가득 넣어 드렸는데,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빈소 곳곳에서는 차디찬 냉골방에서 싸늘히 식어갔을 어머니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A씨가 동구 산수동 자택 안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 3일 오후 3시50분쯤. 전날 저녁 "밑반찬 좀 만들어서 찾아 뵙겠다"던 A씨의 둘째딸 부부가 찾아왔지만 A씨는 냉기 가득한 방에 누워 꿈쩍도 하지 않았다. A씨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자 몸을 어루만지며 깨우던 둘째딸은 이내 오열을 터뜨렸다. 전기장판 위에서 이불을 반쯤 덮고 있던 A씨의 몸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지난달 28일 큰아들이 찾아와 "추위에 따뜻하게 지내세요"라며 보일러 기름통에 기름을 가득 채워줬지만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최근 열흘 넘게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한파가 이어졌지만 A씨는 전기장판 하나로 버텼다. 2일 밤과 3일 새벽 사이에도 광주지역 기온은 영하 9.5도까지 떨어졌다.
A씨는 "전기장판도 세게 틀면 요금이 많이 나온다"며 가장 약하게 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자녀들은 "돈, 기름 걱정하지 말고 따뜻하게 생활하라"고 했지만 A씨는 여간 해선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았다. 2일 밤 둘째 딸의 안부전화를 받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A씨는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무릎관절이 좋지 않은 탓에 거의 집안에서 생활하던 A씨는 평소 자식들에게 "내가 느그들한테 짐은 안 돼야 하는데"라며 걱정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겨울 남편과 사별한 뒤에는 "노인네가 따뜻하게 지내면 뭐하냐. 이제 느그 아버지한테로 가야쓰겠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숨진 A씨를 검안한 결과, 별다른 외상이 없고 사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신이 언 듯 굳어있는 점으로 미뤄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집도 사주고 자주 찾아 뵙는 등 효심이 남달랐다"며 "'그래도 먹고 살만 한데 왜, 왜…'하며 눈물 쏟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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