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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데 세르반떼스의 <돈 끼호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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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데 세르반떼스의 <돈 끼호떼>

입력
2013.01.0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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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물리칠 수 없는 적과 싸우며

견딜 수 없는 슬픔을 견디고

용감한 자조차 함부로 가지 않는 곳으로 돌진하네.

(중략)어떤 의문도 품지 않고, 멈추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우며

하늘이 주신 소명을 위해 기꺼이 지옥으로 행군하겠네.(후략)"

뮤지컬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의 주제곡 '불가능한 꿈'(The Impossible Dream)이다. 완역판 를 읽게 된 직접적 계기는 바로 이 노래 가사가 원작소설에 나오는지 여부를 확인하려는,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한 페이스북 친구가 이 노래 가사를 써 놓은 뒤 출처를 소설 돈키호테라고 달아놓은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뮤지컬 만든 사람이 창작한 건 줄 알았는데, 원작소설에 나온다고."

완역판을 찾아보니 2004년 나온 박 철 한국외대 총장(시공사)의 번역과 이듬해 나온 민용태 고려대 명예교수(창비)의 번역이 있었다. 두 책 중 인터넷 서점의 판매지수 등으로 유추할 때 박 총장의 번역판이 많이 팔리는 것 같다. 물론 뛰어난 번역 때문이겠지만 제목이 로 우리가 잘 아는 표기로 되어 있다는 점과 삽화가 수록됐다는 점도 한몫 하는 듯하다. 보통 인터넷서점 검색창에 '돈끼호떼'보다는 '돈키호테'라고 치지 않겠는가.

그러나 분명 책 판매에 도움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라고 이름을 붙인 그 소신이 재미있어 이 책을 골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SPA(제조ㆍ유통 일괄형 의류) 브랜드 'ZARA'는 '자라'가 아니라 '싸라'라고 읽어야 한다고 항상 주장해 오던 내 기이한 습관과 맞는 듯해서다. 실제로 역자는 원어 발음은 물론 뜻까지 그대로 전하려 한 나머지, 돈키호테의 말 '로시난테'조차 '로신안떼'로 옮겼다. '로신(rosin)'은 '농사꾼', '안떼(ante)'는 '이전'이란 뜻으로, 로신안떼는 '전에는 농사꾼 말이었다'와 '농사꾼 말 중 최고'라는 뜻을 동시에 가진 이름이다.

특히 10년 후에 나온 2권도 번역했다는 점이 좋았다. 1권과 2권은 분위기도 많이 달라질 뿐 아니라 2권의 결말부에 돈키호테가 정신을 차리고 세상을 떠나면서 진짜로 '완결'된다.

1권의 돈키호테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미치광이다. 정의감이 대단하지만 풍차, 양떼, 이발사, 나무 등 별 희한한 것을 기사 소설에 나오는 적으로 생각하고 돌진한다. 얼마나 맞고 다니는지, 불쌍한 산초 판사와 돈키호테는 부러진 뼈 교체용으로 항상 100대씩의 갈비뼈를 소지하고 다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2권에서 두 사람은 다르다. 소설 돈키호테는 당시 최고의 성공을 거뒀고 10년 만에 낸 속편에서 작가는 베스트셀러가 된 사실을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돈키호테는 얻어맞는 일이 현저히 줄었고,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의 환대를 받기도 한다. 산초는 한 공작의 작은 마을을 총독으로서 잠시 다스리기도 하는데, 부패 없이 원칙을 잘 지키고 어려운 재판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등 모범적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줄 정도다.

역자는 돈키호테와 산초가 벌이는 끝없는 말장난의 뜻과 돈키호테가 말하면서 인용 또는 차용한 기사 소설의 원작이 무엇인지를 역주로 전해준다. 하지만 세세한 역주를 참고하더라도 수많은 기사소설을 패러디한 이 소설의 재미를 그 당시 사람들처럼 완전히 느낄 수는 없다. 기사 소설이라고 해 봐야 나 정도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 돈키호테가 그렇게도 숭앙하는 같은 책은 너무 낯설다.

그러나 이 같은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돈키호테가 정말로 재미있고 웃음보가 터지는 작품이라는 사실, 그러면서도 올바른 인생살이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는 걸작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둘도 없는 친구였던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 그리고 그들이 타고 다니는 로시난테와 당나귀는 최초의 근대소설이 창조해 낸 최고의 캐릭터임에 틀림없다.

아 참, 끝까지 읽었지만 뮤지컬의 노래가사는 이 책에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뮤지컬에서 그 노래는 돈키호테가 둘시네아 아씨의 질문에 대답하며 부르는 것이지만 실제 책에서는 돈키호테나 산초가 그토록 사모해 마지 않는 둘시네아를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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