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중심주의 선구자 오길비의 삶 조명 요리사·英첩보원 등 뭘하든 아이디어 빛나광고주 앞 웅덩이에 재킷 깔며 마음 사기도 치밀함 놀라울 정도… 험담 잦고 성미 급해
"소비자는 멍청이가 아니다. 당신의 아내이다. 그녀를 속이지 말고 그녀의 지적 능력을 무시하지 마라."
광고계에서 소비자 중심주의는 당연한 말씀이다. 그렇지만 '현대 광고의 아버지' 데이비드 오길비가 살았던 2차대전 후는 텔레비전을 가진 미국인이 열 명 중 한 명 밖에 없는 때였다. "이 나라엔 광고가 지루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며 불만스러웠던 그는 광고계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는 전 과목 낙제로 옥스퍼드 대학을 중퇴한 젊은이가 전 세계 광고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리더가 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26년 간 100개국에 지사를 둘 정도로 세계적 광고업체로 성장한 오길비앤드매더에서 일하며 가까이에서 오길비를 지켜본 이로, 2,000편이 넘는 글과 100여 회의 대담, 주변인 100여명을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를 정리해 책을 썼다. 괴짜 천재로 유명한 인물답게 혁신적인 광고인의 발자취는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이 펼쳐진다.
선구자가 없을 때는 반 발짝 앞서간 것만으로도 일등이 될 수 있는 시대였지만, 고루한 틀을 깨려는 시도를 하는 용감한 이는 없었다. 1911년 영국 명문가에서 태어난 오길비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난하게 살다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나 제적당한다. 취직도 하지 못해 프랑스로 건너가 요리사로 일을 배우다 조리기구 방문판매원으로, 갤럽의 여론조사원으로, 영국 첩보원으로 다양한 인생경험을 하게 되는데 가는 곳마다 아이디어가 빛났다. 때문에 서른을 넘긴 나이에 광고계의 성지로 불리는 뉴욕 메디슨 가에 입성해 오길비앤드매더를 설립한 후 몇 년이 안돼 성공 가도에 들어서게 된다.
처음 유치한 광고주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화장품 회사의 헬레나 루빈스타인 대표였다. 오길비는 148cm의 왜소한 그에게 높은 왕관을 선물해 환심을 사고, 그가 차에서 내릴 때 앞에 웅덩이가 있는 것을 보고 얼른 뛰어가 그 위에 자기 재킷을 깔 정도로 극진히 모신 덕분에 1년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광고를 15년이나 이어갈 수 있었다.
물론 그가 만든 광고 또한 대단했다. "무조건 팔아라(We Sell. Or Else)"는 말을 금과옥조로 여긴 오길비는 '광고는 소비자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소비자로 하여금 상품을 사게 만드는 존재'라는 점을 직원들에게 강조했다. 창의력으로 구미를 당기는 광고도 좋지만 소비자를 유혹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오길비가 처음 히트시킨 광고는 유명한'해서웨이 셔츠를 입은 사나이'였다. 윌리엄 포크너를 닮은 콧수염이 멋진 중년 남자가 셔츠를 입고 검은 안대를 차고 있는 이 광고는 그가 왜 안대를 하고 있는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며 화제가 됐다. 덕분에 평범한 셔츠는 일주일도 안돼 재고가 바닥이 나 버릴 정도로 잘 팔렸다. 이 광고는 상품뿐 아니라 그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최초의 광고이기도 하다. 또 롤스로이스 자동차 광고에서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신형 롤스로이스 안에서 제일 큰 소음은 시계 소리이다'는 탁월한 문구는 미국 광고계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외판원을 하면서 갈고 닦은 전략부터 갤럽에서 일한 리서치 경력 등이 밑바탕이 됐다고 하나, 오길비의 성공은 타고난 성품 덕이 컸다. 그와 함께 식사를 했다는 한 여성은 오길비가 후식을 먹을 때쯤엔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집요하고 치밀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편 오길비는 상습적인 험담꾼이었으며 어디서든 벌떡 일어나는 성미가 급한 인물이기도 했다. 1965년 '포춘'지가 '데이비드 오길비, 그는 천재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설쳤던 일화는 그가 얼마나 자아도취에 빠진 인물인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종교적, 인종적, 성적 편견도 없던 그는 살만 루슈디, 에드먼드 모리스 등 작가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오길비가 이룩한 가장 중요한 성과는 광고의 개념을 바꾼 것이다. 결국 구매자를 만족시켜야 매출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소비자 중심주의를 강조한 그는 선구자였다. 광고에 모든 소비자 조사를 이용하고 상품과 관계된 지식의 총체를 집적하는 등 전문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 스토리의 연결이 미흡한 평전이긴 하지만, 저자가 누구보다 근거리에서 오길비를 관찰했기 때문에 그의 진면목이 생생하게 담겼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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