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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섬겨라, 퇴계가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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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섬겨라, 퇴계가 그랬듯…

입력
2013.01.0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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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차남 이채는 청상의 아내를 남긴 채 22살에 요절한다. 홀로된 며느리를 늘 가여워하며 지내던 퇴계가 어느 밤 마당을 산책하다 별당에서 들려오는 정다운 속삭임 소리를 듣게 된다. 해괴한 생각에 슬쩍 문틈으로 엿본 모양이다. 과부 며느리가 허수아비를 남편인 양 앉혀두고 소꿉놀이하듯 음식을 권하며 혼잣말을 하고 있더란다. 얼마 뒤 퇴계는 며느리의 실본(失本)을 지시하는(개가를 허락하는) 내용의 편지를 장남에게 보낸다. 반가 여인들에게 불경이부(不更二夫)의 규범이 지엄하던 때다. 대유학이 가문의 법도에 누가 될 수도 있는 저 선택을 한 일은 세상에 잔잔한 파문을 낳아 몇 가지 아름다운 후일담으로 전승됐다.

은 퇴계의 거대한 학문과 사상에 가려져온 인간적인 면모를 소개한 책이다. 책은 특히 퇴계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여인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퇴계를 낳고 7개월 만에 남편을 여의고 홀로 힘겹게 7남매를 양육한 어머니 춘천 박씨, 박씨가 모셨던 퇴계의 할머니 영양 김씨, 퇴계의 사별한 첫째 아내와 둘째 아내 등 그를 훈육하고 또 더불어 지내며 섬긴 여인들과의 사연들이다.

둘째 아내 권씨는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고 한다. 조부의 제삿날 예를 올리기도 전에 젯상의 대추를 집어 먹거나 배를 치마 속에 감추는 일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일로 소동이 있던 날 퇴계는 친척 어른들에게 대신 사죄하며 "귀여운 손자며느리의 잘못이니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도 그리 노여워하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눙친 뒤 조용히 권씨 부인을 불러 이유를 물었고, 배가 먹고 싶었다고 하자 손수 껍질을 깎아주었다고 한다.

부인이 빨간 헝겊을 대 꿰맨 흰 도포를 입고 문상을 가고 대궐 조회에 참석한 일도 이야기처럼 전해지는데, 거기에는 법도의 도그마를 뛰어넘는 대가의 경지나 한유(寒儒)의 풍모와 함께 사려분별이 약한 아내의 귀한 노동에 대한 존중의 뜻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훗날 퇴계는 부부 금슬이 좋지 않은 한 제자에게 "군자의 도란 부부생활에서 시작"되며 "지극히 친밀하기 때문에 지극히 삼가야 한다"는 내용의 장문의 편지를 전하기도 한다.

저자인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앎을 행함으로 완성하고, 법에 얽매여 사람을 섬기지 않는 행태를 실천으로 비판한 퇴계의 삶에서 '섬김의 리더십'이라는 귀한 가르침을 얻었다고 적었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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