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나고 나니까 정치권이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
57년 만에 처음으로 해를 넘겨 예산안을 처리한 장본인들이 본회의 처리 직후 무더기로 외유에 나선 사실이 알려진 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난의 목소리다.
새누리당 소속 장윤석 예결위원장과 김학용 김재경 권성동 김성태 의원, 민주통합당 최재성 홍영표 안규백 민홍철 의원 등 9명의 예결위 소속 의원들은 두 팀으로 나눠 각각 1일과 2일 10박11일 일정으로 멕시코ㆍ코스타리카ㆍ파나마, 케냐ㆍ짐바브웨ㆍ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향했다.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 속한 이들 의원은 국회의사당이 아닌 호텔 방에서 민원성 '쪽지 예산'을 대거 반영했다. 4,500여 건에 5,574억 원 규모이며 이 때문에 극빈층 지원예산 2,824억원이 사라졌다.
이른바 담합 예산 처리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당사자들이 예산안을 처리하자마자 곧바로 국회 예결위 예산 1억5,000만원의 혈세를 쓰며 '뒤풀이' 행사를 해외에서 갖고 있는 것이니 같은 정치권 내에서도 "해도 너무했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여기에다 이들의 외유 명목은 예산 심사시스템 연구라고 한다. 우리나라보다 정치적이나 경제적으로 한참 수준이 떨어지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에서 예산 심사시스템을 배워오겠다는 것이니 한마디로 황당할 따름이다.
물론 이들이 딱히 위법 행위를 한 건 아니다. 법 테두리 내에서 예산안을 처리했고 외유도 국회법에 규정된 내용을 따른 것이긴 하다.
그러나 일반 사회에서도 서로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가 있다. 이들이 올해 국민의 살림살이를 위한 예산을 밀실에서 야합 처리한 뒤, 그것도 모자라 국민 혈세로 관광성 외유를 떠난 것이 그와 같은 사회적 상식 선에서 이해될 일인지 묻고 싶다.
대선에 출마했던 강지원 변호사는 3일 "문제의 의원들이 귀국하면 경비를 모두 반납하게 해야 한다"면서 "이 같은 일부 인사들의 몰지각한 행태로 인해 정치권 전체가 개혁 대상이나 쇄신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이들은 외국 현지에서 국내 언론이나 네티즌들의 비판을 접하고 있을게 분명하다.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돌아오든 서둘러 돌아오든 이젠 중요치 않다. 새해 벽두부터 정치인들의 이 같은 행태에 상처를 입은 국민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강도 높은 처방이 정치권에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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