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 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가정보원 직원 대선 개입 논란의 당사자 김모(29)씨가 진보성향 사이트인 '오늘의 유머'의 선거관련 게시물에 100여차례나 추천ㆍ반대 의사표시를 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김씨가 이 사이트의 게시물에 의사표시를 하는데 사용한 ID는 16개. 김씨는 지난달 서비스를 종료한 포털 업체인 야후코리아의 각각 다른 16개 이메일 계정을 가지고 이 사이트에 등록했다. 오늘의 유머사이트는 아이디, 닉네임,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실명이나 주민등록번호 없이도 회원가입이 가능하고, 야후코리아 역시 실명이 없어도 이메일 계정을 만들 수 있다. 우연인지, 고의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김씨가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경로를 통해 대선 관련 의사표시를 했다는 뜻이다. 경찰이 누구 명의로 만들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김씨가 16개의 ID로 대선 관련 게시물에 의사표시를 했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조직적이라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김씨가 개인적으로 16개의 ID를 만든 게 아니라 김씨처럼 외부활동요원들이 공유하고 있던 ID가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물론 16명의 불특정 다수가 각자의 야후 메일을 이용해 김씨의 노트북으로 해당 사이트에 접속했을 수도 있지만 경찰은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게시판 의사표시에 사용된 16개 ID가 이번 사건의 핵심열쇠로 떠올랐지만 야후코리아의 서버가 미국에 있는 상황에서 압수수색이 사실상 불가능해 16개 ID의 실체규명이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관계자는 "김씨를 피의자신분으로 4일 소환조사를 하는 만큼 김씨의 진술을 보고 다음단계 수사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김씨는 게시물에 추천ㆍ반대 의사표시는 했지만 댓글은 단 흔적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의사표시마저도 공직 선거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이광철 변호사는 "게시글 자체가 정치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이런 행위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있지만 내용이 특정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에 추천을 한 사실이 있다면 공직선거법 상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조직적인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킬만한 정황이 포착됨에 따라 어설픈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경찰 수뇌부의 처사는 정치개입 논란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경찰은 대선 3일 전인 지난해 12월 16일 밤 "김씨가 소유한 컴퓨터 2대의 하드디스크를 분석한 결과, 선거개입 의혹을 살만한 댓글이나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고, 앞으로 수사에서도 발견된 가능성이 없다"고 못박았다. 경찰이 중간수사 발표 후 이틀 만에 구글링을 통해 대선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킬만한 김씨의 수상한 인터넷 흔적을 찾아낸 만큼 졸속 발표였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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