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앞 편의점을 거의 매일 드나드는데, 한 달을 채우기도 전에 알바생이 바뀌어 있곤 했다. 어제는 팩스를 이용하려고 편의점에 들러 기계 사용법에 대해 알바생에게 물었다. 그는 모른다고 했다. 벽에 적혀 있는대로 해보라며. 택배 기계가 꺼져 있던 때에는 "부팅이 되려면 기다려야 한다"고만 말해주었는데, 30분을 기다려도 부팅이 되지 않아 다른 편의점으로 옮겨갔다. "30분은 넘게 걸린다"라고 귀뜸이나마 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되었지만, 그 정도의 친절을 그에게 바라는 것도 터무니 없다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는 기껏해야 시급 5,000원 이하의 돈을 받고 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골손님으로서 내가 받았어야 할 친절의 몫을 그에게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알바생과 나는 이틀에 한번 정도는 얼굴을 보는 사이인데도 서로 인사도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들어가서 "많이 파세요!"하며 인사하고 나오지 않는,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어 어색한, 이상한 공간에 나는 어느덧 단골손님이 되어 있었다.
출근길에 집앞에 쌓인 눈을 쓰는 옆집 가게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는 일, 퇴근길에 짜투리 금액을 깎아주는 가게 아저씨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 일, 내 취향을 이제는 간파한 사서에게 새로운 신간을 추천받거나 새로운 행사에 초대를 받는 일, 요만큼의 시시한 정다움만 회복해도 오늘 하루를 우리는 웃으며 버틸 수 있을 텐데. 편리함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는 동네에서 우리는 관계 맺음의 따뜻함과 뿌듯함을 하나둘씩 잃어가고 있다.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로.
관계는 사람하고만 맺진 않는다. 어떤 물건에, 어떤 시간에, 그리고 어떤 장소에 나의 사연을 채워넣을 때 관계는 맺어지고 마음이 따뜻하고 뿌듯해진다. 내 사연이 채워지지 않는 시간이 허비이고, 내 삶의 숨결이 스미지 않은 물건이 낭비인 것처럼, 사연이 부재한 장소는 죽은 장소나 다름이 없다. 하루하루, 우리는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물건을 낭비하면서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장소를 드나든다. 살아있던 많은 시간과 많은 물건과 많은 장소들을 더 죽어가게 내버려둔다.
대형마트에 생필품과 먹거리를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거의 12시간 이내에 집으로 배달을 해준다. 택배 박스 안에 담긴 물건들을 냉장고며 찬장에 쟁여넣으며 얼마간 든든할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그러나 거기까지일 뿐이다. 그래서 종종 재래시장을 찾아간다. 자전거를 타고 휘휘 한 바퀴 돌면서 필요한 물건과 식재료를 산다. 더러는 깎아주기도 하고 더러는 덤으로 다른 걸 얹어주기도 하면서 가게주인과 이런저런 말을 섞는다. "많이 파세요!", "고맙습니다"…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사람을 만났다는 다정함에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우를 당연한 듯 배제하고 있는 장소는 살아남고, 인간적인 훈훈함을 주고 받아온 장소들은 유지가 어려워 사라지는 우리 동네. 대기업이 수입해온 외국자본의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우리 동네 재래시장도 위태로워졌다. 편의성과 대량판매를 내세운 대형마트 앞에서는 온기를 나누는 일을 먼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소비자다. 작고 힘없는 장소들을 우리가 소외시키면서 종국엔 우리가 소외되어버린다. 그 안에 어떤 다정함이 깃들여 있었는지는 까맣게 잊고서.
하나의 죽은 장소를 하나의 다정한 장소로 바꾸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생각을 하다보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하나. 아이 러브 커피. 커피집을 운영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어플. 이 게임을 즐기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각종 커피 레시피에서부터 아기자기한 다양한 매뉴얼들에 이르기까지, 섬세함으로 꽉 채워진 이 커피 가게 운영 놀이에는 '종업원 급여 주기' 기능이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종업원들에게 임금지불을 하지 않은 채로 인테리어와 단골손님 확보에만 눈이 먼 악덕 업주가 되어 있었다. 현실을 그대로 옮겨온 듯해서 아기자기한 이 게임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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