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초경, 살 빼기 등의 역경을 딛고 지내다 맞는 갱년기. 남성의 경우 머리카락이 빠지고 정력이 감퇴하며 퇴직의 압박이 밀려오는 와중에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위약해지고 위축된다. 감성적으로도 민감해진다. 여성은 폐경이라는 큰 사건을 겪는다. 초경의 충격과는 또 다른 경험이다. 감정적 변화뿐 아니라 질병이라고 분류해도 될 만큼의 신체적 불편을 겪게 된다.
한의학 원전 중 하나인 의 '상고천진론(上古天眞論)'에서는 발달, 성장, 가임, 폐경 등의 변화를 여성은 7년, 남성은 8년 주기로 설명했다. 여성이 7의 2배수인 14세에 임신이 가능해진다고 했으며, 7의 7배수인 49세면 자식을 둘 수 없다고 했다. 무배란성 월경기간이 지난 14세경 임신이 가능한 것과 최근 국내 한 학회가 한국 여성 평균 폐경 연령을 49.7세로 발표한 것을 보면 이 설명은 흥미롭다.
남성이 갱년기 발기부전이나 정력 감퇴로 자신감을 잃어가는 사이 여성 또한 폐경이 돼 여성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찾아온다. 질환으로 어쩔 수 없이 자궁을 적출술한 여성들이 한의원에 와 호소하는 상실감 못지 않다. 남녀를 불문하고 갱년기를 '사추기(思秋期)'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심리적 변화 때문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신체 증상은 상열감(上熱感)이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땀이 얼굴, 이마, 심하면 등이나 가슴까지 흐른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음허화동(陰虛火動)이라고 하며, 혈허(血虛)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갱년기는 인체 구성성분이 활발히 생성되지 않아 부족해지기 쉬운 시기다. 또 가족, 경제, 건강 등의 문제로 고민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한의학에서는 사려과다(思慮過多)하면 혈허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생각을 많이 할수록 혈액이 소모된다는 의미이다. 생성은 잘 되지 않는데 소모는 많으니 혈허가 오기 쉬운 것이다. 혈허의 증상은 어지럼증, 가슴 두근거림, 불면 등이 있을 수 있고 심해지면 불안, 건망증 등으로 변할 수 있다. 이때 땀 흘림, 얼굴 붉어짐 등이 발생한다.
한의학은 열이 난다고 해서 열을 내리는 치료를 하지 않는다. 질병을 허(虛)와 실(實)로 구분했을 때 이런 증상은 허증(虛症)에 해당하므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치료법을 선택한다. 효과가 탁월한 편이고 호르몬요법 등에서 나타나는 부작용도 없다. 단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고 과대광고 하는 건강기능식품은 주의해야 한다. 폐경도 자연의 섭리임을 받아들이고 건강한 노년을 맞을 준비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산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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