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났지만 어린 소녀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힘이 솟았어요."
지난 1일 전북 전주시의 한 원룸에서 밀린 방세 때문에 세입자의 10대 딸에게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오모(59ㆍ구속)씨를 제압해 어린 자매의 생명을 구한 김상규(43ㆍYTN직원)씨와 장모(40ㆍ회사원)씨는 3일 당시 위급했던 상황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들은 당시 서로 가는 길은 달랐지만 우연히 사건 현장 근처를 동시에 지나다가 드라마 같은 한 장면을 목격했다.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추운 날씨에 외투도 걸치지 않고 맨발로 건물에서 뛰쳐나와 겁에 질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이 아이는 먼저 김씨를 보자 달려가 "흉기를 든 사람이 언니를 죽이려 해요"라며 울먹였다. 김씨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얼굴에 핏자국이 선명한 최모(14ㆍ중2)양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며"평소 사건 기자들과 취재를 다녀 순간 '큰 사건'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옆을 지나가던 장씨도 걸음을 멈추고 김씨를 쳐다보고 있었다. 장씨는"'칼을 들었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겁은 났지만 이 소녀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김씨와 함께 건물위로 뛰어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들은 먼저 문을 살짝 열고 틈 사이로 원룸 안의 동태를 살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전경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김씨는 "피가 사방에 튀어 있었고 머리카락도 한 움큼씩 빠져서 바닥에 뒹굴었다"며 "흉기에 찔린 여자 아이는 주방 벽에 기대여 넋을 잃고 앉아 있었고 범인은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김씨와 장씨는 그 상황을 목격하고 곧장 원룸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상체와 하체를 서로 나눠 범인을 제압했다. 그러고는 넋을 잃고 앉아있는 최모(19)양에게 흉기를 주방 쪽으로 던져버리라고 소리쳤다. 범인 오씨는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덩치가 큰 성인 남성 두 명을 뿌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들은 10여분 동안 오씨를 붙잡고 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넘겼다. 김씨는 "당시 겁이 나기도 했지만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 있으면 몸을 던졌을 것"이라며 "이들 자매를 도울 수 있는 창구가 있으면 좋겠고 이들이 악몽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주 덕진경찰서는 4일 김씨 등 2명에게 감사패와 포상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한편 언니 최양은 2일 얼굴신경 수술과 손ㆍ 발가락 봉합수술을 받은 후 현재 가료 중이며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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