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초유의 해를 넘긴 새해예산안 처리와 호텔 밀실회의, 쪽지예산 끼워 넣기 등 예산국회 구태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센 와중에도 여야 국회의원들의 외유성 해외출장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이번 예산파동에 누구보다도 책임이 큰 예산결산특위의 주역들이 그 선봉에 섰다. 책무는 다하지 않았으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리는 챙기고 보는 국회의원들의 파렴치한 행태가 도를 넘었다.
예산 늑장처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예결특위 장윤석 위원장과 계수조정소위 소속 여야 의원 등 9명은 두 개 팀으로 나눠 출국 길에 올랐다. 각각 열흘 정도 일정으로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예산처리 시스템을 둘러본다는 게 출장 목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후진국인 이들 나라의 예산처리 시스템에서 우리 국회가 참고할 게 있는지 의심스럽다. 외교통상통일위, 정무위, 교육과학기술위 등 다른 상임위 소속 여야 의원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외유에 나섰다.
휴회 기간에 국회의원들이 해외 시찰이나 의원외교 활동을 벌이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동안 수 없이 지적돼 왔던 외유성 출장이나 부실 보고서 등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채 관행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번에도 소관 상임위 업무와 별 관련이 없거나 관광지 중심의 일정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의원들은 외유성 해외출장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즐기면서 대선 전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놓았던 국회 특권 내려놓기 약속은 하나도 이행하지 않았다. 의원들의 이번 해외출장에 쏟아지는 공분이 더욱 거센 것은 그래서다. 국회의 대표적 특권으로 꼽힌 전직의원 연금 예산 128억 원을 고스란히 챙겼다. 새누리당의 쇄신안인 의원 겸직 금지, 국회 윤리특위 강화, 불체포 특권 포기 등은 흐지부지 됐고, 민주통합당의 세비 30% 삭감 약속도 종적이 묘연하다. 새누리당은 어제 부랴부랴 특권 포기 문제를 다룰 국회 정치쇄신특위 구성을 야당에 제안했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 대선 때 분출했던 국민들의 정치권 불신을 벌써 잊었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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